A Professional Dilettante
Issac Squab

1998년 와일드 스타일(Wild Style)로 데뷔한 랩퍼, 아이삭 스쿼브(Issac Squab)는 그 동안 트래스패스(Trespass), 쇼하우(ShowHow) 등 여러 팀으로 활동해 왔다. 올해로 데뷔 18년차, 그는 이제야 솔로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다. 앨범 제목은 ‘취미예술가’라는 의미의 <Dilettante>. 취미라서 덜 진지하다는 것이 아니라, 취미이기 때문에 더 자유롭고, 더 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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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8년차에요. 왜 이제야 솔로 앨범이에요?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이 씬에 혼자 음악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2인조, 4인조 방식이 많아서 그 땐 혼자 한다는 생각을 못했죠. 이후엔 힙합씬이 크루 활동 위주로 바뀌었는데, 제가 어디 소속되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엄두를 못 냈던 것 같아요. 독립심이 부족한 탓이죠. (웃음)

CCM 밴드 활동도 했었어요. 약간 의왼데 어떤 것들을 했나요? 
보통 CCM이라고 하면 교회에 상주하는 찬양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각자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자신의 음악으로 신념을 표현하는 거죠. 우리의 공통점이 교회를 다닌다는 거니까 그걸 주제로 음악을 만들고 활동을 하는 거예요. 보통 크리스찬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음악이라고 보시면 돼요. 

올해 초에 ‘까치까치’라는 음원을 냈어요. 새해다짐 같은 가사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올해 얼마나 잘 해낸 것 같아요? 
결론 먼저 말하자면 잘 안 됐죠. 4월에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죽을 뻔 했는데, 그러면서 1년의 중간이 없어졌어요. 하필 사고를 제 생일에 당해서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러면서 솔로 앨범을 구체화할 시간을 벌었던 것 같아요. 

지난 18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아이삭 스쿼브는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어요? 
저는 변두리에 있죠. 맛집이 아니어서 계속 밀려난 상태랄까요? 맛집들은 장사가 잘 되니 월세가 올라도 감당이 되는데, 저는 이제 몇 남은 단골들이 변두리로 찾아오는 정도에요. 이번 앨범 1번 트랙에 그런 가사를 썼어요. 이제는 힙합을 안 세월이 모르고 산 세월보다 길다고. 영광이죠. 힙합이 생소하던 시기에 탐험가 정신으로 힙합하는 형들을 따라다녔는데, 그러다보니 감사하게도 1세대라고 불러줬으니까요. 뒤돌아보면 대한민국 힙합 역사에 포레스트 검프(Forest Gump) 같은 존재였어요. 어떤 변화의 순간마다 함께했더라구요. 씬 중간에 진입을 하고 싶었으나 결국은 밀려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저는 정말 많은 것을 겪었어요. 그러면서 지금, 내 길을 개척해야겠다, 어차피 큰 조류는 변화한다, 40이 넘어서도 랩을 한다는 상상이 현실이 되어간다,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된 거구요. 뒤늦게 이렇게 도전하게 됐어요. 

첫 솔로 앨범 <Dilletante>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딜레탕트는 애호가, 취미예술가라는 뜻이에요. 실제로 프랑스 미술사에서 일어났던 일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미술 대가들이 자본의 힘을 빌어 자본 관련된 미술로 가고 나니, 직업과 상관없이 취미로 예술을 하는 이들이 더 창의적으로 가게 된 거죠. 지금의 내가 그렇다고 생각해요. 저는 음원 판매, 공연만으로는 생계 해결이 안 돼요. 그래서 다른 일들을 하며 음악을 취미로 하게 됐구요. 그 ‘취미’란 일보다 더 열심히 하는 취미를 말해요. 진짜 너무, 제일 좋아하는 걸 취미로 하는 거죠. 내가 음악에 그렇게 접근한다면 좀 더 자유로워질 것 같았어요. 사실 전에 앨범을 내면서는 이렇게 하면 좋아하겠지, 이러면 잘 되지 않을까?, 같은 수를 계산했었어요. 별로였죠. 왜 그랬을까. (웃음) 지금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취미라 생각하니 더 크리에이티브해진 게 있어요. 피처링에 의존하지 않고, 내 얘기만 다 할 수 있게 되니 앨범도 나만의 갤러리 같은 느낌으로 맘껏 채워 넣었어요. 직업은 은퇴가 있지만, 취미는 은퇴가 없어요. 만약 취미로 한 이 앨범이 잘 되면, 내가 상업적으로 가게 될까? 아뇨. 전 그냥 취미에 더 많은 돈을 쓰는 쪽이 될 거예요.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는 앨범인가요? 
따라가지 않는다기 보다는 못 따라간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웃음)

걱정되진 않아요? 
취미니까 걱정은 안 해요. 지금의 트렌드를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가 이런 스펙과 외형으로 트렌드를 따라간다고 해도 좋아하지도 않을 것 같아요. 맞는 옷을 입고 보니 트렌드는 아니더라구요. 그렇다고 요즘 노래를 안 듣는 건 아닌데, 그것들을 따라하기 보다는 절충해서 내가 잘 하는 걸 하는 게 맞죠. 물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거 아닐까, 라는 두려움은 있어요. 하지만 제가 취미로 하는 것을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취미로 공감해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음악을 하지만, 제 삶이 그렇게 보통의 사람들의 그것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거든요. 길에서 느낀 것들, 광화문에 대한 기억을 가사로 쓰고, 똑같이 건강보험에 불만도 많아요. 이런 것들을 잘 포장한다면 누군가는 지지를 보내줄 거라 믿어요. 물론 유통과 홍보의 과정 속에서 트렌디하지 않다는 이유로 힘든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있어요. 막힌다면, 제가 직접 뛰어야죠. 

앨범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도 소개해 주세요. 
없어요. (웃음) 혼자 다했어요. 비트는 함께 작업실을 쓰는 더 지타(The Gita)와 차선수가 대부분 했구요. 타이틀 곡은 ‘Street Romance’에요. 다른 곡들이 좀 우울한 편이라 제일 신나는 트랙으로 정했어요. 홍대 거리에서 홍대의 풍경들을 보며 이런 저런 기억들을 꺼내놓고 의식의 흐름대로 가사를 썼어요. 이 거리에서 약속했던 것들이 있고, 성공하겠다 다짐한 적도 있는데, 사실 조금씩은 다 이루고 살았던 것 같아요. 크게 못 이루다보니 이룬 건지 못 이룬 건지 확실치 않은 것들 것 있긴 하지만요. (웃음) 전엔 정말 거리에서 힙합을 했잖아요. 그런 길에 대한 어떤 사랑을 이야기한 거예요. 마지막 부분에 아까 말한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요. 

시국이 이래서 그런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어요. 시국 비판한다는 선입견은 주고 싶지 않아서요. 대부분 그렇겠지만, 시국을 비판한다고 야당을 옳다고 보지는 않거든요. 그냥 일반 시민의 입장이기 때문에 어떤 프레임은 빗겨갔고, 이 시국에서의 다른 어떤 이야기들을 꺼냈어요. 사실 광화문에 촛불 들고 모인 청춘들만큼 홍대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있었거든요. 수록곡 중 ‘바뻐’라는 트랙에 들이붓기 바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이렇게 힘든데도 누군가는 성공을 한 거죠. 제 나이쯤 되면, 정치적으로 안 살 수가 없어요. 정책 하나가 내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니까요. 몇 만원의 고지서가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데, 정치적이지 않을 수가 없지. 어느 것이 옳고 나쁘다는 이야기만 안 할 뿐 내 삶에서 겪은 걸 풀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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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에 앞서 태히언과 싱글 ‘그대는 결코’를 발매했어요. 이 곡도 들어가게 되나요? 
앨범과 상관없이 단독 싱글로 작업했던 곡이긴 한데, 수록은 돼요. 태히언씨는 쿤타의 소개로 알게 됐는데, 전 그렇게 따뜻하고 좋은 사람을 처음 봤어요. 지금 제주로 이주해서 강정마을서 싸우고 계신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같은 게 너무나 따뜻해요. 집시, 히피의 장점만 있다고 할까? 그 분을 생각하면 ‘어깨동무’란 단어가 생각나요. 같이 울어주고, 같이 노래하는 거죠. 세상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함께 작업했던 곡이에요. 

흥미롭게 들을만한 다른 수록곡들도 소개해주세요. 
‘백스텝’이란 곡이 있어요. 올해 초에 선거를 앞두고 인터넷으로 공개했던 곡인데요. 대한민국이 레트로다, 정치도 레트로가 돼서 70년대로 간다, 정치인들도 레트로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해요. 심지어 교과서마저 복고풍으로 가잖아요. 3월에 냈을 땐 욕을 많이 먹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예견을 하고 만든 곡이냐는 소리를 듣고 있죠. 앨범에 넣으면서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다시 녹음했어요. 제가 진보적인 언론과 방송을 많이 봐서 이런 흐름을 예상 못하지는 않았어요. 지금 와서 많은 뮤지션들이 하야송이다 뭐다 내는데, 사실 항상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야 해요. 이 곡 외엔 3분 넘게 랩만 하는 ‘Issac’s Life’란 곡도 있어요. 제가 416기억저장소(416memory.org) 후원을 결심하면서 했던 생각들인데, 거기 기록들을 보면 정말 오래 마음이 아파요. 그럼에도 보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광화문’이라는 곡엔 그 근처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저의 예전 기억과 어느 날 문득 마주한 세월호 부스를 보며 든 생각들이 들어있어요. 그런 식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여과 없이, 스트레이트하게 담아냈어요. 

첫 앨범 작업을 끝내고는 어떤 생각들을 했어요? 
요즘의 생각들은 많이 정리가 됐는데, 그러면서 두 번째에 어떤 이야기들을 담을 것인지도 생각하게 됐어요. 앨범 작업 자체에서 또 다른 동기를 얻은 거죠. 전엔 두려웠지만 이젠 할 말이 많아진 래퍼에요. 생각은 하면 할수록 늘고, 글은 쓰면 쓸수록 늘어요. 자꾸 하니까 생각도 더 단단해지고 함축적으로 바뀌더라구요. 그래서 첫 앨범이 저에겐 아주 고마운 작업이에요. 2집엔 좀 더 성숙한 생각들이 들어가겠죠. 

인터넷 라디오 <매콤한 라디오>도 하고 있어요. 
힙합 팬들보단 직장인들이 많이 듣는 방송이에요. 처음엔 힙합을 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힙합 라디오를 한 거였어요. 음악도 소개하고, 비평도 하고 그런 거죠. 2009년을 마지막으로 방송을 좀 쉬다가 2012년에 세상을 바꿔보고자 다시 시작했죠. 한참 ‘MB Out’을 위치던 때였어요. 그 즈음엔 비판 의식이 가득해서 콘텐츠진흥원의 예산 집행에 대한 불만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그랬어요. 사실 그 때도 예술문화예산이 말도 안 되는 쪽으로 많이 나갔는데, 그게 진짜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그런 일들마저 지금의 몸통이 있는 줄은 몰랐었지만, 싫은 거 싫다고 다 말하는 방송이긴 했어요. 그러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삶에 허무함이 많이 느껴져서 또 쉬었죠. 이렇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다 DJ 스킵(Skip)형을 만나 그냥 우리가 살면서 겪는 유쾌한 이야기들로 다시 시작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힙합 라이프 스타일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를 하는 거죠. 변두리 래퍼지만 랩을 직업으로 삼은 저나 DJ인 스킵형이나 쿠마도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특이한 사람들을 만나거든요. 그런 잡담을 해요. 처음엔 누가 들을 것 같지 않다는 불안함이 있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내려놓는 과정이 있었는데, 오히려 팬이 더 많아졌어요. (웃음) 지금은 공중파 라디오보다 순위가 높아요. 전에 힙합 음악 좋아하시던 분들이 반갑다고 글 남기는 경우도 있구요. 재미있어요. 

멋대로 했는데, 더 재미있는 게 됐네요. (웃음) 
맞아요. (웃음) 최근에는 듣는 분들이 많아져서 프로그램을 좀 다양화시켰어요. 가리온의 나찰, 생사를 잘 몰랐던 수퍼사이즈 등 저희 주변의 사람들을 소환해서 이야기를 나눠요. 마스터플랜에서 음료수 나눠주던 사람도 데려와서 사는 이야기 나누고 그러는 거죠. 

앞으로의 계획도 알려주세요. 
주류에 끼기가 힘들다는 건 알고 있어요. 주류 장벽도 너무 높구요. 나름 랩으로 이런 저런 무대에 나서기는 하지만, 힙합 팬들이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지는 않아요. 전에는 힙합 공연에 가면 앨범으로 못 들어본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며 평가도 하고, 공감을 하는 에너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집에서 무료 공개곡들을 듣고 공연장에 가서 좋아하는 것만 따라 부르고, 아닌 것들은 무관심한 분위기죠. 전 불리한 위치에 있지만, 전방위적으로 홍보도 많이 할 거고, 받을 수 있다면 도움도 받을 거예요. 또 힙합을 모르는 사람이 와도 즐길만한 공연에도 많이 참가할 생각이에요. 제 랩이 딜리버리가 편한 쪽이라 현장에서 처음 들어도 다 들리거든요. 스킬도 화려하지 않으니 전처럼 공연으로 다가서보자는 생각이 있어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는 게 저의 계획이라면 계획이에요. 

더 나이 들어도 랩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당연하죠. 취미로 전환했으니 더 당연해졌어요. 앞서 가는 형들도 있으니 저는 계속 따라 갈 거예요. 뒤에 무임승차한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씬이 커지려면 그런 것도 있어야 하는 거고. (웃음) 내 나이가 60이면 힙합이 노인정에서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