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의 노래
Thomas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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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쿡(Thomas Cook)이 돌아왔다. 2013년 <Journey> 이후 3년, 그는 꽤 변화해 있었다. 삶이 먼저 변했고, 따라서 음악도 변했다. 자연스러웠음에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 앨범 <Thomas Cook>에는 그렇게 다양한, 많은 감정의 기록들이 담겨있다. 지금의 이야기, 그래서 바로 지금 만끽해야할 음악, 토마스 쿡을 만났다.

토마스 쿡은 마이 앤트 메리(My Aunt Mary)로 오래 밴드 활동을 했다. 마이 앤트 메리 시절에 첫 솔로 앨범 <Timetable(2001)>을 냈고, 밴드가 해산된 이후 <Journey>로 본격적인 솔로 행보를 시작했다. 아름다운 청춘을 노래한 <Journey>는 그가 서른여덟 일 때 나왔다. 직설적으로 말해 앨범을 들으면서 ‘청춘이 아닌데, 청춘을 노래한다’라는 편하지 않은 느낌과 어떤 이미지를 그려놓고 연기하듯 만들어진 음악같다는 어색함이 묻어나왔다. 그럼에도 그는, 노래를 너무 잘 했다. 어떤 특수한 질감의 계절이 돌아오고, 또 감정이 널뛰듯 오르내리면 ‘아무 것도 아닌 나’와 ‘집으로 오는 길’을 들으며 들뜬 속을 진정시켰다. 

그의 새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을 10월 말 SNS에서 접했을 땐, 반가운 마음 반, 두려움 반의 심정이었다. “오~ 드디어!!”와 “2집의 반복은 아니겠지”의 복잡한 마음은 3집이 발매된 11월 3일에야 안정을 찾았다. 토마스 쿡은 용감해졌다. 이러하고 저러해서 일관적이지 않은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앨범에 담아냈는데, 도리어 불안하지가 않다. 완벽히 혼자의 힘으로 풀어낸 <Thomas Cook>엔 바로 지금의 토마스 쿡이 있다. 진짜, 그는 노래를 너무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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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새 앨범이예요. 그동안 개인적인 삶의 변화가 있었죠? 
많이 있었죠. 찾아보셨겠지만,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앨범을 오래 못 내면서, 너무너무 하고 싶었는데 맘처럼 되지 않더라구요. 여건도 안 됐고, 고민도 많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앨범을 내는 거잖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하지 않아 지금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과연 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라는 고민을 오래 했어요. 

어떤 이야기들을 말하는 건가요? 
뭐 그때그때의 생각들요. 곡을 완성해 가면서 ‘누가 흥미를 가져줄까?’ 이런 생각들이 많았죠. 

항상 음악을 해 왔잖아요. 왜 이번에 유독 그랬을까요? 
전엔 누가 관심을 가질지 생각을 안 했어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지금처럼 이렇게 현실적이지 않았죠. 

현실적으로 고민을 하면서 생각이 많아진 이유는요? 
여러 가지 복합적이에요. 지금까지 나온 앨범들은 종이 한 장 차이일지언정 계속 나아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상승폭이 이슈가 될만한 건 없었지만, 밑으로 고꾸라지는 앨범도 없었어요. 조금씩 나아졌다는 거, 그걸 깨는 게 두려웠죠. 내가 이런데 빅스타가 되어본 분들은 새 작업이 진짜 두렵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람이 한 꺼풀 내려 놓는다는게 되게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5년이 넘게 걸렸군요. 
네. 진짜 내가 하는 것, 나인 것을 해 보고 싶었어요. 뭔가 좋아보이는 게 있어서 그거 구경다니면서 내가 뭔가 되어있는 그런 느낌 같은 거 말구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왜 사람들이 나와 내 음악을 만나러 올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했죠. 

저는 음악을 처음 들을 땐, 아무 설명 없이 들어요. 심지어 제목도 안 봐요. 
그게 좋은 거예요.

앨범이 11월 3일 0시에 풀렸잖아요? 그 날 새벽에 깨서 앨범을 듣는데, 처음 든 생각이 “아, 결혼하셨나보네”였어요. 감정의 풍파를 겪었구나, 산고가 있는 앨범이구나, 라는 게 느껴지던데요. 
결혼도 결혼이고, 아마 비슷한 나이 대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런, 비슷한 고민들을 겪어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느껴지는 거고. 저는 이렇게 앨범으로 만들어냈다는 게 너무너무 다행스러워요. 제가 그런 고민들을 아직 정리 못했다면, 아직도 작업만 붙잡고 이건가, 저건가 결정 못했을 테니까. 아직도 그런 상태라면, 아우, 끔찍해요. (웃음)

예술하는 사람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진다는 게 엄청난 변화잖아요. 그 시간들은 어떻게 이겨냈어요? 
이겨냈다고 말씀드리면 많은 분들이 “뭐 그걸 이겨내냐”라며 웃으실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즌이 열린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아이도, 아내도 어색해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죠. 긴 시간동안, 익숙해진 저만의 습관, 패턴 같은 게 있었는데, 그게 이제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거? 그런 것들을 바꾸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걸 굳이 이겨냈다고 말하기는 좀…. (웃음)

애기 아빠라 그런가 봐요. 애기 엄마로선 분명 이겨내야 되는 건데. (웃음) 
아, 제가 보기에도 엄마는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아이가 생기고 나니 여자를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박수가 절로 나와요. 한 사람이 어떻게 이걸 아무 소리 안 하고 다 하고 있지? 그런데도 심지어 웃을 수도 있어요. 엄마는 대단하구나. (웃음) 

이제야 셀프타이틀 앨범이에요. 
이번 앨범을 하기 전부터, 심지어 지금까지도 계속 제 자신에 대해 궁금해요.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은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지든 똑같이 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저는 완성된 목표, 그 완성을 위해 장르적인 도전을 하고, 뭔가를 쌓아 올려가는 작업에는 관심이 없어요. 다음 앨범엔 또 그 때 보고 느낀 것들을 제 시각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겠죠. 앨범을 오래 쉬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대로 뮤지션으로서 사라진다고 해도 정말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아닌데. 저처럼 토마스 쿡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프겠죠. 
그럼에도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웃음) 이미 세상에 없는 뮤지션들의 노래를 듣거나 웹서핑 중에 우연히 그들의 인터뷰를 볼 때 찡~할 때가 많아요. 그 때 그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그 모습으로 그 시간을 살았구나. 정답에 얼마나 가까워지느냐가 아니라 그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음악으로 비춰내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5~6년 전에 술자리에서 선배형들이 이런 비슷한 말들을 많이 해줬어요. 그 때 난 하루하루가 암담하고 답답한데, 새벽까지 붙잡아 놓고 이런 소리나 하나, 나 약올리는 건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구체적으로 어떤 말들이었어요? 
“야, 나는 더 이상 그렇게는 음악 못 할 것 같애. 그런 건 너희들이 해야지.” 정상급의 뮤지션이 이런 소리를….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분들도 알았던 거죠. 긴 레이싱 코스에서 한 코스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전 제 길이 직선도로인 줄 알았어요. 멋있게 쭉~ 가다가 정점을 찍고 은퇴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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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쿡 3집 앨범 <Thomas Cook>

3집을 발매하고 나서 뒤돌아보는 2집은 어땠던 거 같아요? 
풋풋하고 아름다웠어요. 깨끗했구요. 좀 웃기지만, 청순함이 느껴져요. 정리 안 되고 잘 모르겠는, 불분명한 부분이 많은, 그런 아름다움 같은 게 있었어요.

‘청춘’ 이런 거 있으니까, 청순하긴 했죠. (웃음) 
아주 잘 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하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그 자체가 막 멋이라고 느끼고 있는 내가 보여요. 그 시간이 아름다웠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지금 3집을 듣고 나니 2집 앨범에서는 뭔가 안 풀린 감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밝고 긍정적인데, 뭔가 연기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솔직히 말하면, ‘토마스 쿡은 아직 발랄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웃음) 사실 전에, 진영씨(한진영)가 옐로우몬스터스로 나왔을 때, 물어본 적이 있어요. 마이 앤트 메리의 <Just Pop(2004)>의 인기 이후로 달라진 게 없냐고. 밴드로서 그 다음 장을 쓰는 것이 너무 어려웠고, 결국 밴드의 해산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어때요, 순용씨 입장에선? 
똑같아요. 맞는 말 했네요.  

좋은 앨범 다음에 우쭐한 마음들이 다 있었던 거군요. 
우쭐했죠. 진영이가 제일 우쭐했던 거고. (웃음) 저도 다르지 않았어요. 앨범이 나오고 2~3년 지난 뒤에, 적이 형(이적)이랑 술을 마시는데 형이 그러더라구요. “오해마라, 근데 니 생에 이렇게 아름다운 앨범은 다시 안 나올 수도 있다.” 약 오르더라구요. 근데 또 “오해 말라고. 내가 좋은 이야기 해주는 거야”라고. (웃음) 젊을 때, 아무 것도 모를 때 낸 앨범인데, 왜 그렇게 이야기 하냐고 그랬더니 “내가 그 뜻이 아니야~ 아~~~~”하고 더 말을 안 하시더라구요. 시간이 지나서야 그걸 이해하게 됐죠. 모든 일들은, 그 때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20대 후반의 그 멋이라야 가능한 그런 게 있었죠 그 때. 
우리 셋의 호흡도 가장 근사한 구도로 섰을 때라고 해야 하나?

심지어 그 즈음의 공연 땐 팬들도 멋있었어요. 자기 삶을 멋있게 사는 것 같은 멋있는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왔었다는 생각을 요즘에도 해요. 그 때 그런 앨범이 있었고, 모두가 충분히 즐겼다는 것은 참 좋은 기억이죠. 감사해요. 
저도 그래요. 그 때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추억을 좋게 생각한다는 걸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해요. 우연찮은 모든 사람들의 케미가 만들어낸 거잖아요.

근데 지금이 더 좋아요. 40대로 넘어왔고. ‘사라진 불빛’ 같은 곡도 나오고. 저는 이 곡이 마이 앤트 메리 시절 얘긴가 싶더라구요. 그 때를 뒤돌아보는 그런 마음인가? 
그렇게도 해석이 될 수 있겠네요. 그런 자유로운 해석도 너무 좋아요. 근데 아니에요. (웃음) 

JTBC 뉴스룸에서는 또 시국에 맞게 해석을 했나보더라구요. 다 자기 입장에서 듣는 거예요. 
그러니까요. (웃음) ‘사라진 불빛’은 원래 ‘사랑의 불빛’이었어요. 어느 누군가가 허락도 없이 내게 다가와서 피하기 싫은 따듯한 밝은 빛을 쬐어주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줄 알고 있다가 문득 낯선 골목에서 발가벗은 내 모습을 보게 된 거에요. 원래 그 사람은 내게 없는 걸 갖고 있는 사람이었고 아름답고 소중한 것으로 우리 관계가 타오르다가 아, 이건 처음부터 잘못 생각한 거다. 그렇게 사라진 불빛을 알게 됐다. 이번 앨범에서 사랑의 이야기가 좀 달라졌어요. ‘둘만의 노래’도 그렇고, ‘그래안녕’도 그렇고. 전에 제가 이야기했던 사랑은 남녀 간의 밀당, 긴장감, 아슬아슬한 어느 밤에 대한 거였는데. 

아주 아슬아슬했죠. ‘4시20분’은 지금 들어도 두근거려요. 
그게 전부였어요 그 땐. 하하. 지금은, 아무튼 사랑에 대해서는 시각이 열렸어요. 다른 사랑도 있구나.  

적절한 타이밍인 것 같아서 물어볼께요. ‘둘만의 노래’의 둘은 나와 연인인가요? 
하하하. 

아무리 들어도 아내한테 하는 노래로서는 너무 귀여워서 따님에 대한 얘긴가 싶어서요. (웃음) 
절반은 그렇고, 절반은…. 사실은 전에 함께 살던 고양이에요. 결혼을 하고 와이프가 기침을 시작했는데, 안 멈추는 거예요. 열흘 넘게 기침을 하다가 어느 날 밤에 응급실에 가게 됐어요. 급성 알러지라고 하더라구요. 검사해보니 고양이털 알러지가 93프로라고. 그래서 헤어지게 됐어요.

고양이랑 헤어졌다는 거죠? 
네네. (웃음) 그 고양이는, 제가 솔로로 지냈던 시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고양이에요. 키워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그냥 가족이란 거. 결국 아내 때문에 아이가 없는 친구네 집에 보냈는데, 그 때 초안으로 써 놨던 곡이에요. 너에게 영원한 형아가 되어주기로 했는데, 미안하다. 대신 노래를 만들게. 노래 안에서만큼은 우리 똑같이 웃고, 즐기고, 뛰고, 눈 맞추고 있는 거야. 언제 어디서나 따뜻함을 잃지 않고, 호기심 가득했던 네가 너무 좋았다, 라고. 초안을 써 놓고 몇 년이 지났는데, 아이와 겹쳐지는 것들이 있어 다시 작업을 했죠. 행복했던 시간, 함께 했던 관계들을 사진처럼 노래로 만들어 놓고 싶었어요. 이제 이 노래가 세상에 나왔고, 노래는 죽지 않아. 노래 안에서 우린 영원히 춤추고 사랑할 거야.

이 곡도 그렇지만, 가사를 일부러 중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하게끔 쓴 이유가 있어요? 
저 원래 직설적으로 쓰는 거 안 좋아해요.  

이번 앨범이 유난히 그래요. 지금 설명을 들으면서도 주체가 겹치네요. 
전달력 있는 가사가 그런 거 같아요. 가사로 생김새를 명확히 설명하는 것보다는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생긴 걸까’라는 궁금함을 주는 게 좋아요. 

이번 앨범 음악도 물론 좋지만 가사적인 부분이 지금의 토마스 쿡의 이야긴데, 지금의 나에게도 맞고, 그런 게 음악을 계속 듣게 만드는 거 같아요. 
지금의 시선, 그런 걸 표현하려 했어요.

‘두 번째 인생’은 어떤 의미의 두 번째에요? 
산후조리원에서 쓴 곡이에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물론 그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아, 나는 반드시 죽겠구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 때가 상해에 살다가 아내 출산 때문에 한국에 와 있는 상황이었어요. 귀국하면서 짐을 다 상해에 두고 왔는데, 혹시 몰라서 어쿠스틱 기타를 가져왔어요. 정신없겠지만, 혹시나 날 위로해 줄 게 필요할 때 기타라도 붙잡고 자야지, 하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팍 떠올라서 그 곡을 쓰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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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로서의 인생인 건가요 그럼? 
아빠라는 설정은 없었구요. 내 인생이 다른 방향으로 가는구나, 여기서 레이스가 꺾여 다른 코스로 왔구나, 이제 새로운 시즌이다. 그러니 방황하던, 아름다웠던 청춘은 이제 지나갔구나. 돌아보지 마라. 이제 조금씩 내 삶이 보인다. 겁내지 마라. 항상 처음처럼 일어서, 일어서. 

아, 남자는 이렇게 바뀌는군요? 
아, 자꾸 아이 얘기가 나오니까 제가 훌륭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뭐 너만 그러고 사니?, 이런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어둠의 왕’ 같은 곡은 충격적이에요. 토마스쿡에게서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어둡고 무거운 곡이라. 
그래서 해 봤어요. 이거 뭐야?, 이런 거. 너무 짜릿했어요.

용감해졌어요. (웃음) 
이제 못 할 거 없죠. 겁나는 것도 별로 없고요. 음악적인 시도, 새로운 것을 해 보고 싶었고, 스펙트럼을 넓혀보자는 의도가 있었어요. 제가 힙합이나 EDM, 옐로우몬스터스 같은 걸 할 수는 없잖아요. 취향도 아니구요. 내가 갈 수 있는 범위가 어딜까, 그런 생각과 시도 끝에 그 곡이 나왔어요. 작업할 때 가끔, 스스로에게 풋풋해지라고, 더 상큼해져야 한다고 주문할 때가 있었어요. 그렇게 가다가 어느 순간 또 다른 제가 물어보죠. ‘아니 왜?’, ‘사람들 앞에 나설 거잖아. 머리도 새로 하고, 옷도 좀 사고, 그래야 되지 않겠어?’, ‘그런 게 어딨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야’라는 쪽이 ‘어둠의 왕’을 만들 때 이긴 거고, 그래서 작업이 됐어요. 전 같았으면 수록하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음악하는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데모나 들어보는 정도였겠죠. 누가 이해해줄까, 라는 걱정보단 앞으로도 이런 식의 음악적인 시도는 잃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잘 하는, 항상 저만의 색깔인 것은 잘 다듬어 가지고 있고, 나무 가꾸듯 새로운 가지도 잘 유지해 나가고 싶어요. 또 모르죠, 어느 순간 변화라고 할 만한 걸 하게 될지. 

이제야 다양한 자아들의 이야기를 꺼내놓으시는 것 같아요. 솔직히 토마스 쿡이 어떻게 이런 걸 넣었지, 그리고 회사에서 괜찮다고 한 것도 신기해, 라고 생각 했어요. (웃음) 
이번에 정말 여러 이야기를 꺼냈죠. 회사 이사님이 처음에 듣더니 “어후~” 한 마디 하시더라구요. (웃음) 그 때 이거다, 싶은 게 있었어요. 적이 형, 원선 누나(조원선), 동률이 형(김동률)의 반응도 새로웠구요. 하도 여러 사람의 반응을 듣다보면 진짜 아무리 포커페이스로 말을 해도 딱 알거든요. 울림이 괜찮았어요. 만족스러운 울림이었죠. 반응이 제각각인 것도 좋았어요. 

‘그래안녕’이 타이틀 곡이 된 이유가 있나요? 
밴드 때도 그랬고, 지금까지 제가 타이틀 곡을 정해본 적이 없어요. 밴드할 땐 “너희들이 골라”, 아님 사무실에 “골라주세요.” 다 열심히 했으니 어느 곡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인 거죠. 만든 입장에선 사실, 정말 특이한 곡을 골라주면 좋겠다, 나도 특이한 캐릭터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고. (웃음) 근데 그렇지는 않았고, 매번 안전한, 듣기 좋은 것들을 하게 돼죠. 이번엔 ‘그래안녕’이 가장 부드럽고 흡수가 빠른 느낌이었나 봐요. 

이 질문 좀 웃긴데, 노래를 되게 잘 하니까 이런 거 저런 거 다 해봐야지 라는 생각 안 하지 않죠? 
당연하죠. 심지어 다 해봐요. 해 본 것들을 발표 안 하고 혼자 가지고 있을 뿐이지. (웃음) 공연에서 김현식의 노래를 해 보고 싶어서 6년을 연습했어요. 근데 아직도 못 했네요. ‘사랑할 수 없어’, ‘떠나가 버렸네’ 이런 곡들은 아직도 연습을 하는데, 잘 안 돼요. 어느 선배가 그러더라구요. 아마추어는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고, 프로는 잘 하는 걸 하는 사람이라고. 김현식의 노래를 연습할 때마다 내가 좋아하지만 잘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아요. 어떻게 그렇게 안 나올 수가 있을까. 내가 그렇게 많이 들었던 노래들인데.  

주변에 음악하시는 분들, 그것도 잘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번 앨범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때요? 
기억나는 건, 왜 혼자 다 했냐. 세션도 없으니까요. 혹시 돈 아끼려고 혼자 다 했냐고. (웃음) 그리고 전반적인 스타일이 의외다. 제가 느끼기엔 좋은 쪽으로 한 말인 것 같아요. 마음 가는대로 한 게 마음에 든다는 분도 있었어요. 주변에서도 지난 2집 이후의 제 행보를, 제 마음의 상태를 궁금해 했던 것 같아요. 그들이 궁금해 하는 마음의 상태였던 적이 잠깐 있어요. 길지 않았죠. 그러고는 새 우물에서 새 물을 길어올리는 기분이었죠. 다들 그걸 예상 못 한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어, 뭐지?”라는 반응이 나왔던 것 같구요. 기분 좋았어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돼서 짜릿했어요. 
 
2집에는 김동률이라는 프로듀서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번엔 프로듀서는 물론, 세션도 안 쓰셨는데, 처음부터 내가 아닌 다른 분들은 배제하고 시작했어요? 
아뇨. 시작은, 밑그림을 잘 그리고 훌륭한 분들을 모시자는 거였어요. 근데 이번에 내 앨범에 들어있는 비트의 그루브는 내 그루브였으면 좋겠고, 내 질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훌륭한 분들과 함께하면 보기에 좋은 매끄러운 모습이 나올 거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궁극적으로 가고 싶은 코어를 위해서는 한 번 더 기다려야 하는 타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니 이번엔 어디가 찌그러져 있으면 찌그러져 있는대로, 스크래치가 났다면 난 그대로의 토마스 쿡을 담자, 그 호흡으로 가자. 그러다보니 혼자 마무리하게 됐구요.

작업기간이 길었겠어요. 
1년 반이요. 길었어요. 곡도 같이 쓰면서 하니까. 

인디에서 태어나 아주 오래 해 오셨어요. 올해가 인디 20주년의 해였잖아요. 여전히 그 말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제 음악 경력의 중간에 인디가 아니었던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인디란 말이 다시 아름다워졌어요.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뜻인지 더 알게 됐고.

무슨 뜻이던가요? 
그런 향기, 체취가 있어요. 여전히 그런 향기를 가진 팀들이 있죠. 전과 다른 게 있다면 그런 팀들도 너무 빨리 물들어요. 전엔 더뎠는데, 지금의 시장 구조로는 어제의 인디가 오늘의 10센치가 되어 (테이블에 있는 <파운드 매거진> 10월호를 가리키며) 이렇게 잘 코디된 상태로 잡지 커버에 앉아있어요. 이런 시절인 거죠. 그러나 어떤 연주와 음악에서 인디의 냄새가 물씬 나는 때가 있어요. 시한성이 있겠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이기도 해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그들은 그걸 모를 수도 있지만, 지켜보는 그 순간이 저는 너무 아름다워요. 그 시절을 아니까, 겪었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이렇게 앨범을 내는 저는 여전히 인디에요. 후배들이 그런 이야기 할 때 있어요. 이번 앨범 내서 잘 될 수 있을까, 유지할 수 있을까, 라고. 사실 전 겁이 안 나요. 나 인디야. 다 안 된다고 하면, 뭘 고민해. 인디로 하면 되잖아? 돈을 적게 들인다는 의미의 인디가 아니라, 무방향, 무계획으로 생긴 그대로 한다는 거죠. 그게 인디잖아요. 한국에선 유난히 선수를 좋아해요. 전문가,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런 것들이 가치를 인정받아요. 인구 수가 더 많거나 땅이 넓은 나라들은 그런 것에 물드는 것보다는 한 가지 색에만 푹 젖어있는 것에 환호를 하거든요. 사실 후자가 주는 감동이 더 크잖아요. 처음에 그렇게 한 가지에 젖어 반짝이는 순간이 왔는데, 결국 이 음악 씬에선 갑자기 팔방미인이 되어버리는 거죠. 머리 자르고, 까끌까끌하던 거 다 밀어버리고 나니 클럽 FF에 있는 애나 망원시장 골목에 돌아다는 애가 다른 점이 없어요. 제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참 아쉬워요. 전 아직 물들기 전의, 그런 청춘들이 정말 아름답다 생각해요. 

그런 청춘들이 또 계속 나와주겠죠?
그럼요.  

12월 첫 주에 콘서트 앞두고 계세요. 왜 이렇게 작은 데서 해요? 
왜 작다고 생각해요?

표가 너무 빨리 매진됐어요. 
아니죠. 왜 이렇게 많은 분들이 표를 샀을까요?, 라고 물어보셔야죠. (웃음) 저한텐 작은 공연장이 아니예요. 저 오픈 몇 분만에 매진되는 공연을 하던 사람이 아니거든요. 한 보름쯤 걸리겠다 했는데 3분 만에 다 팔렸다고 하더라구요. 그 동안 제 공연에 오시던 분들은 한 명도 못 오실 것 같아요. 아마 오픈 며칠 지나서 ‘이제 예매 좀 해 볼까?’ 하셨을 텐데. (웃음)

맞는 말씀이긴 해요. (웃음) 앨범 하나 더 나왔어요. 이제 또 어떻게 가실 건가요? 
일단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소득은 다음 앨범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됐다는 거예요. 대략 어떤 것들을 하고 싶은지도 대충 섰어요. 그게 너무 소중하고 고마워요. 이번 앨범이 저에게 준 어떤 선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앨범처럼 너무 텀이 길지 않게 빨리, 아니 빨리라기 보단 너무 늦지 않게 내고 싶고, 그만큼 꾸준히 작업해서 저란 사람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어요. 사람들이 인트로만 들어도 아는 그런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구요. 음악을 하는 저와 사람 정순용은 달라요. 제가 하는 음악 작업이 저의 가치를 정하지 않는 거죠. 전에는 음악이라는 작은 접시에 코를 박고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예요. 음악은 저라는 사람 안에 컵 하나, 커피 잔 하나 같은 거죠. 필요하면 들고, 다 마셨으면 내려 놓는 거예요. 그것에 좌지우지 되고 싶지 않아요. 이제 편안하게 그때그때의 저를 발표해 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