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Not Now, When?
Bae, Sung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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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 더 가까이
인터뷰가 있는 그 날도, 배성우는 연극 연습이 예정돼 있었다. 인터뷰 날짜를 기준으로 약 2주 뒤 연극 <클로저>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었다. 네 명의 주인공이 복잡 미묘한 감정의 실타래로, 사랑과 상처의 그물로 얽히고 설키는 <클로저>의 서사엔 지극히 개인적이라서, 정확히 보편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이 통째 들어차 있다. 

벌써 여섯 번째, <클로저>에서 치과 의사 ‘래리’ 역을 맡아 막바지 연습 중인 배성우를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클로저>와 함께 SBS파워FM<박선영의 씨네타운>이 연관 검색어로 나란히 떴다. 2주간 라디오 스페셜 DJ를 맡아 매일 오전 생방송으로 청취자를 만난 탓이었다. 라디오 DJ, 연극 연습, 인터뷰 전날에 막을 내린 또 다른 연극 <트루웨스트 리턴즈>, 다작 배우답게 새로운 영화 준비까지 앞둔 2016년 8월의 배성우에게 처음 해본 DJ는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너무 헤맸다”였다.

헤맨 티는 거의 안 나던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티를 좀 냈어야 하나, 싶어요. 사고도 한번 치고 그래야 재미있고 그런데…. (웃음)  

(웃음) 사람들을 웃기고 싶은 마음이 평소에 좀 있어요? 
개그 욕심 같은 건 없어요. 임시로 DJ를 한 거니까, 프로그램에서 괜히 이상한 걸 하는 게 좋진 않겠더라고요. 그래서 사고 안 치고 무난하게 땜빵을 잘한 거로 만족해요.

조정석 배우가 성우 씨한테 그랬어요. “세상 세상 이렇게 재밌는 분이 없다”고. 
정석이가 유독 절 재미있어해요. 근데 정석이도 재밌는 애예요. 사석에서 보면 배우들 다 재밌잖아요. 배우들은 다들 주둥이 까는 사람들이니까. 

라디오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성우 씨 목소리에 온 신경이 쏠리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톤을 가지고 있었나, 새삼 와 닿았어요. 
기본적으로 가진 소리는 좋은 편인 것 같아요. 사실 어릴 때부터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공연을 워낙 많이 해서 지금은 목이 많이 상했어요. 결절도 막 생기고요. 상한 쪽으로 목소리가 정리됐다고 해야 하나? (웃음) 

라디오 진행하면서 좋아하는 배우, 영화 얘기도 많이 했어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Philip Seymour Hoffman)이나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같은 배우들에 관한 멘트가 있었죠. 그런 사람들은 저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누구든 좋아하는 배우들이잖아요. 그리고 한국의 이창동 감독, 한재림 감독 얘기도 했었고요. 한재림 감독의 <우아한 세계>에 출연했던 박지영 씨가 게스트로 나와서 영화 얘길 많이 했죠. 

예전에 <우아한 세계>의 송강호 배우를 좋아한다고 한 적도 있죠? 
송강호 배우는 같은 배우로서 부러운 점과 배울 점을 모두 가진 선배예요. 본인의 매력을 확실히 가지고 있고, 그 매력을 영화에서 필요로 하는 캐릭터 안에서 정확한 분석으로 녹여내는 배우죠.

근데 성우 씨도 “정밀하고 정확하게 캐릭터를 분석해서 작품에 임한다”고 한 적 있어요. 그렇다면 배우 배성우도 이미 그런 사람 아닌가요? 
그렇게 말을 한 적 있죠. 근데 그건 제가 실제로 그렇다기보단, 일종의 다짐 같은 거예요.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이고,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한 2주 뒤에 <클로저> 공연이 시작돼요. 연습 막바지일 텐데, 라디오까지 같이 하느라 정신없었을 것 같아요. 
이틀 전엔 <트루웨스트 리턴즈> 공연까지 끝냈으니까 더 정신없었죠. 최근 들어 일이 겹쳐서 스트레스도 좀 받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네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요? 혹시, 술로? 
술자릴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전 스트레스와 술을 서로 연관 짓지 않아요. (웃음) 재밌는 사람, 좋은 사람 만났을 때, 제일 자연스러운 자리가 술자리잖아요. 그게 좋아서 술을 마시는 거지, 스트레스 받는다고 술 마시면 오히려 하나도 안 풀려요.

그럼 다른 방법으로 풀어요? 
음, 딱히 풀고 말고 할 게 없어요. 그냥 가만히 있는 거? 텔레비전 보고 영화도 보고 그런 거 정도. 정말 별거 없죠. (웃음) 요즘은 많이 못 하는데, 예전엔 운동도 많이 했어요.

바빠서 못하는 건가요? 
아니요. 게을러서. (웃음) 음, 그런데요, 사실 공연하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연기 자체가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연기는 돈 벌려고도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처럼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직업이 곧 취미인 사람과 마주 보며 얘기하고 있었군요. 
그림 그리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은 취미로 시작해서, 직업으로 삼기도 하잖아요. 물론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도, 얻는 즐거움만큼이나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많겠죠. 그런데 그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뭔가를 해내야 직업으로써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거잖아요. 직업을 취미처럼 생각하면 그런 좋은 순환이 생기는 거죠.
 
SNS에서 <클로저> 출연 배우들과 모임을 한 사진을 봤어요. 서로의 호흡은 어때요? 
항상 좋았어요. 이전에도 <클로저> 공연은 몇 번 했는데, 할 때마다 같이 하는 배우들의 다른 색깔들이 모아져요. 이번에도 이동화라는 친구 빼곤 배우들이 전부 바뀌었거든요. 그렇게 바뀌면서 작품이 달라지는 재미도 있죠.

2008년에 처음으로 <클로저>에 합류한 걸 포함해 이번이 여섯 번째예요. 같은 연극 무대에 계속 서는 이유가 있나요? 
스스로 재미를 많이 느끼는 작품이거든요. 만약 재미가 없었다면, 하더라도 한 번만 하고 말았겠죠. 근데 <클로저>는 워낙 스테디하게 올라가는 공연인데다가, 저도 계속하고 싶어서 상황만 맞으면 또 하고, 또 하고 그랬죠. 사실 워낙 재밌는 작품이라 다른 거 연습할 때보다 제가 훨씬 더 많이 나가기도 했어요.

‘나갔다’는 표현은, 연극을 준비하는 현장에 자주 갔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여배우들이 예뻐서 자주 나간다는 말은 아니고요. (웃음) <클로저>는 연출적인 부분에서 배우들이 참여를 많이 하는 작품이에요. 이유가 있어요. 우선, 대본 자체가 굉장히 어려워요. 단어 하나에도 여러 뜻이 담겨 있는 데다, 영국 특유의 위트가 있기 때문에 번역한 대본으로 그런 뉘앙스를 잘 살려야 하거든요. 그래서 배우들이 고민을 많이 하죠. 대사 자체도 짧은 문장을 툭툭 던지며 주고받는 식이어서, 대본에 굉장히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배우들이 어떤 단어와 어떤 뉘앙스로 표현해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죠. 뜬금없이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하고요. 

성우 씨가 맡은 ‘래리’를 포함해서 캐릭터들이 다들 솔직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작품이 담고 있는 정서는 너무 힘든 정서인데, 주인공들의 표현방식이 다 좀 독특해요. 예를 들어 주인공 중 한 명이 너무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데, 그걸 직접적으로 “나 너무 힘들어”라고 표현하지 않아요. 본인은 비극적인 상황에 있어도 제삼자가 봤을 땐 좀 코믹하게,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시켜서 말해요. 영국이나 미국이 갖고 있는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담겨 있는 작품이죠. 풍자나 해학을 담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학처럼요. 

동명의 영화 <클로저>도 있어요. 연극은 영화와 어떤 차이가 있어요? 
<클로저> 기본적으론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이라도 겪을 수 있는 이야기예요. 그런 보편성은 영화든 연극이든 모두 갖고 있죠. 차이점은, 영화는 남녀 간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연극은 그것보다 더 큰 범위에서 이야길 해요. 영화는 멜로에 좀 더 치중되어 있고, 보는 사람도 인물 간의 정서 쪽으로 집중하게 돼요. 그런데 연극은 배우들의 전신이 움직이고 말을 주고받는 전체적인 상황이 먼저 보이니까, 정서가 먼저 보이는 영화랑 비교하면 풍겨지는 뉘앙스가 달라요. 그리고 남녀 간의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인생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죠.

8년 동안 래리를 수십 번, 어쩌면 그 이상 연기했어요. 어느 인터뷰에서 “같은 역할이어도 매일 연기가 달라져서 신기하다”라고 한 적 있는데요. 래리를 연기할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해요. 
<클로저> 무대 연기는 지금까지 백 번 넘게 했을 거예요. 그날의 컨디션, 상대방의 리액션에 따라 연기가 달라지잖아요? 조금 관념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렇게 달라지는 상황을 받아들여서 매번 다르게 연기해야 하겠지만, 연극은 약속된 측면이 강하니까 그 약속을 지키면서 연기하려 하죠. 근데 그러지 못하고 약속이 조금 어그러지는 날엔 아쉬움이 남아요.

그래도 하면 할수록 숙달되니까 그런 아쉬움도 적어지지 않아요? 
워낙 많이 했으니까 익숙해진 부분은 있겠지만, 그래도 항상 아쉬운 점은 있어요. 번역극의 한계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로저>는 재밌는 만큼 아쉬움도 항상 남는 작품이에요. 제 안에서 ‘이 정도는 해야 돼’하는 나름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을 때는 아쉬운 부분이 생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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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과 가장의 환희
독특한 이력이 있어요.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죠?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셨어요.

부모님 모두 문화예술 분야에 높은 식견을 가진 분들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성우 씨가 배우가 된 것도 환경적인 영향이 있었나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문학이나 영화, 미술 같은 예술적인 부분에 관심을 많이 두고 계셨어요. 그렇다고 엘리트 집안은 아니었고요. 그리고 사실은, 독립운동가는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을 보면 오히려 더 어려운 삶을 사시잖아요. 그래도 부모님의 관심사 때문에 제가 알게 모르게 정서적인 영향을 받은 부분은 있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예술성을 지닌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공부도 못하고, 딱히 할 것도 없어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웃음)

어떤 이유로 스스로를 ‘집안의 돌연변이’라고 했어요? 
저만 공부를 못했어요. 우리 땐 성적 안 되는 애들은 그냥 ‘잉여 인간’이었거든요. 공부를 못하니까 앞으론 뭘 해야 하지, 그런 고민만 많았어요. 대학은 갈 수 있을까, 대학을 나와선 또 뭘 할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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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폰>

연기하고 싶단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요? 
어렸을 때부터 연기 경험이 있었어요. 그때 했던 건 연기라기보단, 교회 다니면서 연극도 하고 중창도 하잖아요. 그런 걸 하면서 재미를 많이 느꼈죠.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 원서 쓸 때가 됐는데, 어느 과를 써야 되는지 고민하다가 연극영화과를 지원하게 됐어요. 앞으로 꼭 배우를 해야지, 이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고요.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을 ‘연기자’로 썼죠? 
학생 때 특별한 꿈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막막한 경우가 더 많잖아요. 그래서 다들 뜬구름 잡는 얘기를 많이 한단 말이에요. 저 초등학교 때만 해도 반에 3분의 1이상은….

과학자? 
과학자 아니면, 남자애들은 운동 선수. 또 어떤 애들은 뜬금없이 대통령. (웃음) 그러다 보니까 장래희망에 뭘 쓰면 재밌을까, 생각했어요. 그게 배우였죠.

담임선생님께서 뭐라고 안 하셨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쓴 거지?” 하셨죠. 먹고 살기 힘드니까 취미로나 하라고도 하셨어요. 장래희망에 배우 쓰고 나서, 원서도 연극영화학과로 넣었는데, 당장 학교를 들어가진 못했어요. 그래서 학교보단 연기를 먼저 시작했죠. 오디션을 봐서 뮤지컬을 했어요.

데뷔작이 <레미제라블>이었어요. 
여러 공연을 해보니까 재미도 있고, 이게 나한테 맞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군대 갔다 와선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못 갔던 학교도 입학하고, 연기도 계속하면서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했죠. 

학교도 들어가고, 극단 학전도 들어갔어요. 
워낙 어릴 때부터 팬으로서 좋아했던 극단이었기 때문에, 배우를 하게 되면 거기서부터 시작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학전에도 오디션을 보고 들어갔죠. 학전 배우들은 다들 오디션 출신들이에요. 

학전 수장 김민기 선생으로부터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그분은 배우한테 이렇게 저렇게 해라, 하시는 분은 아니셨어요. 그냥 가끔 넌지시, 표현하시는 정도였죠. 학전에서 저만큼 공연을 많이 한 배우는 없을 거예요. <지하철 1호선> 같은, 학전에서 천 회나 올린 공연도 많이 했고, 다른 공연들도, 그리고 아동극까지도 했어요. 학전에서 하는 아동극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요. 

아동극이지만, 깊이가 있다는 뜻인가요? 
김민기 선생님이 배우한테 가르침을 주신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이에요. 선생님은 “너는 이렇게 해야 돼”라고 말씀하시기보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직접 몸으로 보여주셨어요. 선생님이 어느 날 아동극을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애들을 상대로 돈벌이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 아동극을요. 고민을 엄청나게 많이 하셨어요. 선생님의 스타일이 이래요. 만약에 유럽을 배경으로 한 원작이 있다면, 작품 안엔 그 나라의 사회적인 고민거리가 들어있기 마련이잖아요.

근데 선생님은 원작을 가져와 번안할 때 한국엔 어떤 문제가 있을까, 고민해서 거의 재창작 수준으로 번안하시는 분이에요. <지하철 1호선> 번안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독일 원작자가 그걸 보고서 “이건 더 이상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로열티를 안 받았을 정도였거든요. 아동극을 만들 때도 그 정도의 공을 들이셨어요. 그런 부분을 많이 보고 배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아동극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재밌기도 했고요.

아이들은 순수해서, 그래서 반응도 솔직하죠? 
재미없으면 막 드러눕고 그러죠. (웃음) 어른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은 더 티가 나죠. 재밌으면 너무 심하게 좋아하고요. 

학전은 배우 배성우의 어떤 밑천이었나요? 
연기 생활의 베이스죠. 배우는 배역을 연기하고 관객과 만나면서 스스로 체득해야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처음 연기를 시작하는 배우가 아니라, 자기중심이 어느 정도 잡히고 만들어진 배우한텐 경험을 쌓아서 체득해나가는 부분들이 정말로 커요. 전 그런 것들을 학전 성격의 작품을 하면서 배울 수 있었죠. 

그렇게 줄곧 연극을 해오다가 영화도 시작하게 됐어요. 첫 영화가 <미쓰 홍당무>였죠? 
그땐 참 정신없이 했습니다. 연극이랑은 메커니즘이 다르니까 많이 어려웠어요.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배우 배성우를 기억하게 된 계기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었어요. 
<미쓰 홍당무> 바로 다음 작품이었죠. 그거 하고 나서 매니저가 방송국에 제 프로필 내러 가면 다들 연기 좋다고, 진짜 영화 속 섬에 사는 사람 같다고, 근데 캐릭터가 너무 세서 선뜻 캐스팅을 못 하겠다고 했대요. (웃음) 너무 지저분하고, 너무 드러워 보이니까.

형수를 겁탈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철종’ 역할을 맡았죠. 일단 분장부터가, 진짜 더러웠어요…. 
촬영 첫날 되게 재밌었던 게, 얼굴 분장하고 츄리닝 입고 대기하고 있는데,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주더라고요. 그래서 구멍가게 옆에서 먹고 있는데, 절 태우고 가야 되는 제작차가 제 얼굴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웃음) 제가 “여기야~” 하면서 다시 부르니까 돌아와서 하는 말이, 진짜 몰랐다고, 동네 사람이 서 있는 줄 알았대요.

영화 보면 당시엔 영화계에선 신인이었는데, 배우 생활을 굉장히 오래 한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런 능수능란함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어요? 
영화는 배우한테 판을 깔아주잖아요. 그 안에서 솔직하게 반응하려고 했어요. 상황 안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되는지만 생각하고 했던 것 같아요. 그 작품도 재밌게 찍었어요. 돈을 너무 못 받긴 했지만요. 다들 힘들었어요. 감독도 힘들었고. 

칸에 초청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수익은 또 다른 문제였나 봐요. 
대중적으로 흥행이 될 만한 작품은 아니었으니까요. 처음엔 정말 적은 관에서 했는데, 관이 점점 늘어날 수 있었던 건 뒤 늦게나마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기 때문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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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

# 그냥 ‘배우’ 배성우
작품 선정 기준이, ‘섭외가 들어오는 모든 작품’이라는 얘기가 있어요. 사실인가요? 
우선 연기하는 직업이고, 좋아서 하는 거니까 상황만 맞으면, 최대한 많은 작품을 하려고 해요. 

선호하는 캐릭터가 있나요? 
꼭 이런 걸 해봐야지, 하는 마음은 사실 없어요. 많은 작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작품 수는 한정되어 있잖아요. 매력적인 캐릭터를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오피스>의 ‘김병국 과장’ 캐릭터도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대사보단 눈빛과 행동으로 배우 배성우의 존재감에 무게를 더했던 인물이었죠. 
연기를 전형적으로 해도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독특하게 해도 설득이 안 될 것 같았어요. 대사보단 아무래도 이미지적인 부분이 많은 데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오피스> 개봉 후 인터뷰할 때, ‘나도 남 못지않게 불안한 때가 있었다“고 했어요. 어떤 시절이 그렇게 힘이 들었었나요? 
집에다 더 돈을 갖다 주고 싶었죠. (웃음) 불안감이라는 건 누구나 다 가지고 있잖아요. 개인의 불안은 시스템의 불안 때문에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렇게 누구나 느끼는 불안감을 저도 느꼈던 것 같아요. 사실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돈에 대한 생각도 좀 막연했어요. 돈을 얼마 벌고 싶다, 이런 생각은 안 했기 때문에 그래서 덜 힘들지 않나 싶어요. 

연기 때문에 불안함을 느끼기도 하나요? 
시작하기 전엔 많이 불안했어요. 학전에서 연기를 제대로 시작하고 나서는 그냥 앞만 보고 달렸죠. 연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삶을 지탱하는 다른 부분들은 힘겹게 느껴질 때가 있었겠지만요. 이를테면 금전적인 부분 같은 것들. 

금전적인 부분도 이젠 어느 정도 해소가 됐죠? 
예전에 비해선 좀 나아졌죠. (웃음) 

부모님과 같이 살죠? 아들한테 어떤 말씀을 많이 하세요? 
“똑바로 해”라고요. 저희 부모님은 처음부터 항상 똑같은 말을 하세요. 밖에 가서 똑바로 하고, 남한테 피해 주지 말라고 하시죠.

어떤 연기를 하건 자기 자신인 배우가 있는가 하면, 작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도 있어요. 성우 씨는 어떤 쪽이에요? 
특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기보단, 내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려고 해요. 그래야 더 ‘다르게’ 보이거든요. 만약에 다르게 보이려고 마음먹고 연기를 하면, 오히려 그 배우는 달라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관객한테도 ‘다르게 보이려고 연기하는 모습이 보이는 배우’를 보여줘선 안 돼요. 그건 정말 큰 문제거든요. 그렇다고 배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 너무 부각시켜서도 안 돼요. 그래서 전 항상 적절한 선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게 나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는 방법이 아닌가 해요. 연기라는 게, 없는 모습을 만들어내서 하는 게 아니라, 배우 안에 있는 어떤 모습을 상황에 맞춰서 끌어내는 부분이 강하니까요. 

<클로저> 이후엔 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당분간 연극과 영화를 병행해야 할 것 같아요. 연극을 연달아 했던 건 아무래도 실수인 것 같아요. (웃음) <클로저> 하고 나선 연극은 당분간 쉴 것 같고요. 하반기에 얘기되고 있는 영화도 있어요.

어떤 작품이에요? 
<꾼>이라는 영화요. 사기꾼의 ‘꾼’이에요. 재밌는 영화가 될 겁니다. 

거기선 사기꾼으로 나오나요? 
(웃음) 그건 비밀입니다. 

직접 보라는 뜻이죠? 
맞아요.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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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순간
출연한 어떤 작품이건, 얼마만큼의 분량이건 상관없이 관객이 배성우라는 존재의 무게를 느끼게 된 건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배성우를 두고 “요즘 영화들 여기저기 다 나오는 배우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베테랑> <내부자들> <특종: 량첸살인기> <뷰티 인사이드> <더 폰> 같은 최근작들을 포함해, 배성우는 지난 2년 동안에만 2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다. 

‘다작 요정’이란 찬사는 일찌감치 획득했고, 올 3월 <섬, 사라진 사람들>의 염전 노예 ‘상호’로 호평을 받고 난 후엔 ‘다작 노예’란 수식어까지 챙겼다. 작품을 많이 하는 이유에 대해 배성우는 마치 ‘놀면 뭐하느냐’는 듯, 배우가 계속 연기하는 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똑같다는 태도로 일축했지만, 사실 그건 배우가 가진 힘에 달린 문제였다. 20년에 가까운 연기적 밑천을 가진 배우는 이제 당연하다는 듯 되묻는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