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oneer of Techno
Derrick May

데릭 메이(Derrick May)가 첫 내한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데릭 메이는 1980년대 초중반 테크노를 시작한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이다. 1987년에 발매된 싱글 <Strings Of Life>를 비롯한 그의 음악은 당대 활동하고 있는 프로듀서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각 지역에서 디제잉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자신의 음반 레이블인 트랜스매트 레코즈(Transmat Records)를 통해서 재능있는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등 20년이 넘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는 ‘2016 레드불 뮤직 아카데미 클럽의 밤’에서 공연을 마친 다음날 진행됐다. 데릭 메이는 밤새 디제잉 공연으로 인한 피곤함 대신, 한국 팬들의 에너지로 가득 채운 생기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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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공연은 어땠나요? 
굉장히 좋았어요. 사실, 한국 공연 전날 베이징에서 플레잉을 하고 와서 잠도 잘 못 자고, 한국 도착 후 저녁 식사도 못해서 많이 피곤한 상태였어요. 막상 공연을 시작하니 피곤함은 사라지고, 현장 분위기와 한국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힘입어 1시간 더 연장해서 공연했죠. (웃음)
 
테크노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를 만들었는데, 음악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제가 처음에 음악을 시작할 때, 디스코, 게이클럽 신 밖에 존재하지 않았어요. 이런 음악 환경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던 시기, 저는 그야말로 분노가 가득했는데 그런 감정들을 분출하고 싶다는 생각에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자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친구들이 새로운 걸 만들어 나가는 건 당연하다고 봐요. 음악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는 철없는 아이들이 하는 음악이라고 무시 받곤 했어요. 열이 엄청 받았죠. (웃음) 그래서 열심히 하려 했고, 그러다보니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디트로이트 테크노는 당시 디트로이트 시의 어려운 경제상황과 맞물려 탄생한 음악 장르예요. 새로운 음악 장르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모든 위대한 것은 황무지에서 태어난다고 믿어요. 땀과 피와 눈물 없이는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없죠. 미국에서 성공하기까지 10년이 걸렸어요. 10년이 지나니 유럽 쪽에 서서히 알려지더라구요. 그 때부터 유럽의 각종 레이블과 잡지사 등에서 연락이 왔어요. 유럽에 알려졌을 때 본격적으로 저의 음악 커리어의 발판이 됐죠.
 
1987년에 발매된 싱글 <Nude Photo>가 첫 번째 작업물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데뷔곡은 후안 에킨스(Juan Atkins)와 같이 프로듀싱한 X-Ray의 ‘Let’s Go’예요. 그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저의 데뷔 앨범으로 알고 있는 EP <Nude Photo>가 두 번째 앨범이죠.

싱글 <String Of Life>는 지금까지 많은 프로듀서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어요. 곡의 어떤 점이 현재 많은 프로듀서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사실, 뮤지션으로서 하나의 음악으로만 평가받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재해석 된다는 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아요. ‘디트로이트의 아들’ 프린스(Prince Rogers Nelson)도 많은 사람들에게 ‘Purple Rain’으로 기억되고 있죠. 분명 ‘Purple Rain’이 그의 최고의 작품이 아닐 수도 있고, 그 외에 수많은 명곡들이 있을텐데 말이죠. ‘String of Life’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어요.(웃음) 아마도 이 곡을 만들 당시 저의 감정이 듣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었던 게 아닐까요?

곡을 만들 당시 어떤 일이 있었어요? 
제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떠났어요. 그러다보니 할아버지 손에 자라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이 음악을 만들 당시 조그마한 방에서 창 밖 도시를 보면서 다양한 이미지들을 상상했고, 동시에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들이 떠올라 곡에 녹였죠. 데릭 메이는 몰라도, 마치 천사들과 춤추는 듯한 ‘String Of Life’의 깨끗하고 순수한 멜로디에 사람들이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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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영감은 어디에서 받는지 궁금해요. 
디트로이트는 모타운(Motown)의 고장이자,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일어나던 도시였어요. 그런 도시에서 자라면서 사람들에게 라디오가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음악을 들려줄 의무감을 느꼈어요. 크래프트 베르크(Kraftwerk), 조지 클린턴(Goerge Clinton),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의 음악을 들으면서 영감을 받았고, 13살 때는 멘토인 후안 앳킨스(Juan Atkins)를 통해 지미 헨드릭스(Jimmy Hendrix)의 음악을 처음으로 접하게 됐죠.
 
앨범 작업을 계속 하다가, 1990년대를 기점으로 디제잉 활동에 주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음반사와 일하면서 갈등도 많았고 음악 신에 대해 불만이 생기니 앨범 작업이 싫어졌던 시기였어요. 어떤 음악을 만들라는 지시와 간섭이 많았고, 심지어 제가 만든 음악을 뺏어가려고 했죠. 식어버린 애정을 다시 찾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번에 오케스트라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음반 작업에 대한 애정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오케스트라 협업 프로젝트는 어떤 건가요? 
클래식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Francesco Tristano)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예요. 최근에는 ‘데릭 메이 & 마케도니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최고의 DJ라 생각하는 제프 밀스(Jeff Mills)가 최초로 시도했고, 그에게 영감을 받아 제 방식대로 좀 더 진화시켜서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해요.
  
디제잉을 해 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일본에서 지진으로 인해 쓰나미와 방사능 문제가 터진 후, 일본에서 계획된 다른 아티스트들의 공연, 행사 등이 모두 취소가 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위해 일본에 갔어요. 자연재해로 인한 슬픈 상황이었지만 저의 공연을 보기위해 서너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정말 감동을 받았죠. 12시간 동안 플레잉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구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10월에 도쿄 몬트리얼 페스티벌에서 투어가 있어요. 투어가 끝나고 다시 앨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내년에는 저의 새로운 앨범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데릭메이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를 비롯해 다른 뮤지션들과 작업을 계속 해 나가고 싶어요. 댄스음악이 EDM신에서만 인정받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매니아들의 음악이 아니라 전체 음악신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죠. 현재 영화 음악 쪽으로 작업을 조금씩 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런 활동이 발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