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봉우리
Twin Peaks 展

지난 9월 30일부터 하이트컬렉션에서 <트윈 픽스> 전시가 열리고 있다. ‘두 개의 봉우리’라는 전시 제목으로부터 당장 떠오르는 건,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가 연출한 동명의 미국드라마 <트윈 픽스(Twin Peaks, 1992)>다. 이번 전시 역시 데이비드 린치의 연출작을 그대로 가지고 왔지만, 여기서 ‘봉우리(Peak)’는 실제 봉우리와는 다른 어떤 지표로써 사용되었다. 이 지표는 특정한 시대를 가리키는 ‘관념적인 지형’이다. 각 봉우리는 2000년대 중반, 그리고 2010년대 중반에 활동을 시작한 신진 작가와 미술사적 자취를 남긴 작가들, 그리고 작가들의 작품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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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식, 늙은 정치인(1), 2016

<트윈 픽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모두 회화를 공개했다. 첫 번째 봉우리에 위치한 작가들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가, 송은미술대상 수상 등 2000년대 중반에 신진 작가로서 주목받았던 이들이다. 사람의 일상을 도려낸 듯 사실적이고도 섬세한 연필드로잉이 돋보이는 문성식의 ‘늙은 정치인’ ‘남과 여’ ‘다시 청춘’, 무심코 지나간 날의 평범한 기억을 눈앞에 가져다 놓은 최은경의 ‘발축전-거울’, 생략과 단순화 작업을 통해 추상에 가까운 회화를 완성한 임자혁의 ‘그리하여’ ‘그렇더라도’를 포함한 아홉 작가의 회화가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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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혜, MsMoss, 2016

두 번째 봉우리엔 최근 2~3년 사이에 등장한 신진 작가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김하나, 박광수, 박정혜를 포함한 아홉 작가가 두 번째 봉우리로 모여들었다. 작품 세계가 어느 정도 구축된 기존 작가들과는 달리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놓인, 때론 시행착오도 겪으며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만들어가는 작가들이다. 기존 사물을 통해 가상의 풍경을 평면의 회화로 완성한 박정혜의 ‘Ms. Moss’, 가로세로 2미터 가량의 천에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을 그린 후, 갤러리가 아닌 거리에 전시한 이우성의 ‘Rain’ 같은 작품들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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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Rain, 2016

<트윈 픽스> 전시를 위해 모인 열여덟 명의 작가는 오직 활동 시기를 기준으로 두 개의봉우리로 분류됐기 때문에, 작가들 사이에 다른 공통점은 없었다. 그러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10년이란 간격은 한국 회화의 과거와 현재라는 흐름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특정한 시대를 의미하는 두 개의 우뚝 솟은 봉우리는 동시대를 사는 작가들이 서로 다른 방향성을 표출한 결과물이자, 한국 회화가 흘러가는 과정이 담긴 시대적 지형이었다. 실제의 봉우리를 ‘시간’이라는 관념적 봉우리로 재해석한 이번 <트윈 픽스> 전시는 12월 10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