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의 힘
<한글 서書 × 라틴 타이포그래피>

Dirk Behage&Evelyn ter Bekke , MUSEE NATIONAL ADRIEN DUBOUCHE - LIMOGES.jpg
Dirk Behage&Evelyn ter Bekke, Musee National Adrien Dubouche-Limoges, 2012

글자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잊고 지냈다. 지난 10월 19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한글 서書 × 라틴 타이포그래피> 전시를 보고 글자만큼 생활 깊숙이 자리한 예술작품이 없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이 전시에서 국내 작가의 서예 작품과 AGI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동시에 만날 수 있었다. AGI(국제그래픽연맹, Alliance Graphique Internationale)는 1951년 창립한 그래픽 디자이너의 모임으로, 이번 전시는 전 세계의 작가들이 참여한 만큼 독특한 작품들이 시선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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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호, 폭포, 파도의 ‘ㅍ’, 종이에 먹, 2016

박세호의 ‘폭포, 파도의 ㅍ’, 박원규의 ‘길’, 강병인의 ‘솔’은 모두 글자 자체가 품고 있는 힘을 보여주었다. 한지에 먹으로 각각 ‘ㅍ’ ‘길’ ‘솔’이라는 단어를 그린 것뿐인데, 단어의 의미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문봉선은 흰 종이에 윤동주의 시 ‘개’를 먹물과 붓으로 그렸다. 그 글자들은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라는 구절의 풍경을 저절로 떠오르게 했다. 종이에 글을 ‘썼다’는 표현보다는 ‘그렸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들이었다.

라틴 알파벳의 타이포그래피는 한글 서예와 다른 매력이 있었다.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인의 요소인 만큼 실용성이 강조된 작품이 특히 눈에 띄었다. 페스티벌이나 행사 포스터의 타이틀 글자만으로도 이벤트가 어떤 성격일지 예상할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더크 베지 앤 이블린 터 베크(Dirk Behage & Evelyn Ter Bekke)의 ‘Musee National Adrien Dubouche-Limoges’였다. 이는 프랑스 아드리앙 뒤부쉐 박물관(Musee National Adrien Dubouche)의 전시 포스터인데, 프랑스어를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포스터의 타이포그래피를 보면 한눈에 어떤 전시인지 느끼게 된다.

이 전시는 동아시아의 정신문화를 담은 서예와 디지털 문자 시대의 타이포그래피를 한자리에서 보여줌으로써 세계 문자 문화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으며, 흘러갈 것인지 생각하게 했다. 전통과 새로운 것이 서로 영역을 넓히는 장이 되는 이런 전시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음과 모음, 알파벳 하나도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심상을 가진다. 글자에도 힘이 있다. 서울 전시 후 창원순회전이 10월 27일부터 11월 6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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