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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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오동도
여수는 이번이 다섯 번째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의 여수는 언제 가도 실망하지 않는 여행지 중의 하나다. 언제, 어떻게, 누구와 가도 좋다는 뜻이다. 여수에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가는 곳은 오동도다. 멀리서 바라보면 오동잎을 닮았다는 이유로 오동도라고도 하고, 섬 가득 동백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서 동백섬이라고도 한다. 육지와 이어져있는 방파제 길을 따라 동백열차가 운행되고 있기 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열차를 기다리지 않고 걸어서 들어간다. 가지런히 정박해 있는 요트와 보트들을 구경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듯 걸어 들어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다. 

하얀 눈이 오는 겨울날, 만개한 빨간 동백꽃, 그리고 비현실적으로 초록 초록한 잎사귀들이 만들어주는 묘한 조화로움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계절이 일렀다. 빽빽하게 가려진 가지 사이, 나무 터널을 따라 걷는다. 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나뭇잎들 사이로 내리쬐는 작은 빛들이 동백꽃만큼이나 아름다운 그림자 꽃을 만들어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바람 따라 살랑거리는 따뜻한 색깔의 그 보석 같은 빛의 꽃들이 아쉬웠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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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털 케이블 카
여수돌산과 자산공원을 이어주는 해상 케이블카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늘 대기 줄이 아주 길다. 그러나 가격차이 때문에 크리스털 케이블카를 선택하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탈 수 있다. 그런데, 기다리기 싫다고 별 생각 않고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타게 된다면 식은땀을 좀 흘릴 수도 있겠다. 산을 따라 내려가 바다를 건너는데 투명한 바닥에 발을 딛고 있으면,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저런 아찔한 생각들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그때서야 구석구석 아름다운 모습들이 눈에 보인다. 탑승 시간이 긴 편이라 긴장감이 풀리고도 한참 동안 풍경 감상할만한 시간이 있다. 가만히 앉아서 만나지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신기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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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타는 곳 바로 옆에 위치한 돌산공원은 야경이 멋지기로 유명하다. 아쉽게도 직접 본적은 없지만 낮에 가 봐도 야경의 멋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여수의 여러 가지 모습들은 어느 하나 버릴게 없다. 뭔가에 홀리듯 셔터를 눌러보면 너무 완벽해서 정말 판매하는 엽서 사진 같을 정도인데, 몇 걸음 자리를 옮겨 내려다보면 다른 매력의 또 다른 장소 같은 게 그야말로 볼 게 많다. 

그 바다 위를 유람선이 긴 꼬리를 남기며 지나간다. 왠지 이국적인 느낌에 유럽 여행 갔던 생각도 하고, 저 유람선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저 동그란 섬 안엔 누가 살고는 있을까. 살고 있다면 어떻게 들어갈까? 별 것 아닌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생각과 망상의 공간들이 넓어진다. 옆에 있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들인지 다들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러다 말고, 배가 고프다는 1차원적인 생각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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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장 파티
여행에서 허기만큼 반가운 게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정하고 간장게장 집으로 향했다. 이미 식사 때를 한참 지난 시간인데도 음식점 앞 주차공간은 시장통이다. 사람이 많아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맛에 대한 안도감이 든다. 커피 한 잔 가격에 간장게장, 양념게장, 꽃게된장에 다른 반찬 가짓수도 셀 수가 없을 정도로 푸짐하다. 게장은 인원수만큼의 횟수로 리필이 가능하다는 행복한 사실! 정신없긴 하지만 가성비 최고의 식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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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나오다가 귀여운 빵집을 발견했다. 규모도, 이름도 귀여운 ‘싱글벙글 빵집’. 구경만 하고 그냥 지나치려 하다가 빵순이만이 알 수 있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장식장같이 조그만 진열대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빵들 사이에 야채 사라다빵을 발견했다. 언제 어디서 마주쳐도 지나칠 수 없는, 정말 사랑하는 빵이다. 이 곳은 심지어 빵의 질감도 예사롭지 않다. 깨끗한 기름에 튀겨낸 쫄깃한 도너츠. 설탕이 솔솔 뿌려져 있는 빵 안으로 보기만 해도 아삭한 양배추채가 마요네즈에 버무려져 있고 케찹 포인트도 잊지 않았다. 가격도 착해서 무조건 600원. 이것저것 종류별로 골라 담아도 5000원을 못 채우는, 가격마저도 귀엽기 그지없다. 사라다빵과 슈크림빵을 사서 숨도 안 쉬고 정말 한 번에 다 먹었다. 쫀득쫀득 아삭아삭. 집에 돌아온 후에도 너무 생각이 나서 그 빵 때문에 곧 다시 여수를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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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산책 
조금 걸으며 부른 배를 달래주고자 항구로 갔다. 세상 모든 배들이 다 모여 있는 듯, 항구에는 많은 배들이 질서 있게 정박해 있다. 항구는 어딜 가도 이색적이다. 작은 배들부터 오징어 배까지 종류도 다양한 수많은 배들 사이로 보이는 바닷물은 예상과 다르게 아주 깨끗한데 그 사이 바닷물 속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물고기들이 제법 보인다. 바로 앞에 안이 훤히 보이는 물 속에 큰 물고기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뜰채만 있으면 떠 낼 수 있겠다 싶다. 수면 가까이 요리조리 떼 지어 움직이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면서 수족관에서의 그것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자유로운 생동감이 느껴진다. 멀리 밤바다 수평선과 함께 로맨틱하게 반짝이며 열정을 다했던 오징어 배들도 그곳에서 지난밤 고됐던 시간 잊은 듯 힘을 쫙 빼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잔바람에 흔들리는 전구들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처럼 환하고 예쁘게 불 켜진 모습을 상상해 본다. 두근거린다.

지금을 살아가며 내 의지와 다르게 얻어진 상심과 낙심, 상실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별 다른 말이나 그 흔한 제스쳐 없이도 위로를 얻을 수 있었던 시간. 여수는 밤바다도 좋고 이 곳의 땅과 바다에 반짝이는 빛들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