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_City of Diaspora
베를린, 도망친 사람들의 도시

베를린에서 열린 어느 사진 전시 오프닝에서 만난 사진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폴란드에서 왔어요.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고 당장 이 도시로 달려왔어요. 이 도시가 나를 부르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한편 이 말을 들은 나는 머리가 조금 아파지려고 했다. 닭 깃털로 만든 가짜 날개를 어깨에 이고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영화의 이미지는 실로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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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아스트 중에서 이 영화를 숭배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추락한 천사, 당신의 잔상은 아직까지도 유효하군요. 악의가 없다는 것은 인정하겠어요. 하지만 이미지의 환영과 제한된 재현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속여 왔나요. 심지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1989년 11월) 무려 십 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리 선언하자면, 베를린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이 글을 보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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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나도 속았다. 베를린 테겔 공항에 내렸을 때 나의 마음은 갓 구운 빵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으며, 베를린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 없이 관대하고 사랑스러웠다. 예술의 도시,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핫하고 힙한 도시. 길거리에서 남루하고 궁색한 행색의 사람들을 마주칠 때조차도 그들도 모두 예술혼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들인 양 가슴이 설레었다. 그러나 베를린에서 두 달째를 맞이한 지금, 과연 이 생각들이 맞았던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 어쩌면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도시 중의 하나가 베를린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배신감마저 든다. 

똑똑히 말할테니, 잘 들어주길 바란다. 베를린은 결단코 예술의 도시가 아니다. 예술가들의 도시이다. 혹은 예술가 지망생들의 도시이다. 무엇이 다르냐고? 이제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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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베를린은 가난하다. 독일에서도 GDP와 실업률을 따졌을 때 객관적으로 돈이 절대적으로 없는 도시이다. 독일과 영국의 도시정책은 종종 도시학자들의 비교대상에 오르는데,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해서 런던에 절대적인 노력과 자원을 쏟아 붓는 영국과는 달리, 베를린은 자연발생적 방목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즉,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생긴 대로. 그렇게 내버려 두되, ‘가난하지만 섹시한 Poor But Sexy’라는 기막힌 슬로건으로 전 세계 예술가들을 불러 모은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왜 베를린으로 모여들었을까? 답은 매우 간단하다. 물가가 저렴하니까!  
 
누군가 당신에게 “저는 최근에 베를린에서 좀 있었어요. 거기서 몇 년 있으면서 전시도 하고 예술가로 살았어요”라고 말한다면, 한 번 쯤 공정한 마음으로 엄격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댈 것을 권고하는 바이다. 다시 말하지만 베를린은 가난한 도시이다. 유럽 미술 시장의 큰 손, 화려하고 현란한 아트쇼는 존재하지 않는다. 베를린 아트위크에 열린 베를린 최고 아트페어라는 ABC 아트페어를 둘러본 나의 마음은 오히려 착잡했다. 

한국의 KIAF의 규모와 수준의 반의 반도 못 미치는 것 같다는 것이 나를 포함한 예술계 사람들의 중론이다. 베를린에서 만난 한 한국 예술가는 나에게 이렇게까지 말했다. “솔직히, 실패한 예술가들이 베를린에 오는 거 아니에요?” 그렇다면 왜, 어쩌다가 베를린이 예술의 도시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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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장과 화이트 큐브 대신, 베를린에 꽃 피운 예술은 인디 아트 신(scene)이다. 베를린 도시 안에서만 존재하는 대안공간(전통적인 미술 주류 시스템-미술관과 갤러리 등-에 저항하며 비주류 미술의 표현을 지향하는 예술 공간)이 수 백 개가 넘는다. 개중에는 독창적인 인디 문화가 꽃을 피우는 뜻 있는 공간들도 많지만, 도무지 정체성을 알 수 없는 비주류 예술 공간들도 적지 않다. 어떤 자격과 검증도 필요 없는 그런 예술 공간들에서 누군가가 달력의 마크를 채우기 위해 전시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뿐더러, 현장에서조차 진짜와 가짜의 검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곳은 혼돈 그 자체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오늘의 도시, 베를린이니까. 거듭 말하지만, 베를린을 두고 예술의 도시라고 일컫는 것은 그 행간을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베를린은 유럽의 여타 도시들에 비해 비자에 관대하다. 막대한 학비를 쏟아 붓고도 졸업 후에는 인정사정없이 쫓아내는 런던과는 달리, 독일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독일어를 준비하겠다는 어학비자를 신청하면 2년 동안은 베를린에서 지낼 수 있다. 그 유예기간 동안 전세계에서 난민들이 모여든다. 난민, 혹은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아프리카와 중동, 터키 등 동유럽에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체제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온 사람들이 베를린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밖의 한국을 포함한 상대적으로 ‘개발된’ 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 그들은 왜 베를린으로 왔을까? 그들이 고향에서 어떤 희망도, 출구도 찾을 수 없어 모인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야박한 표현일까? 물론, 더 큰 무대와 기회를 찾기 위한 야심을 실현하고자 모인 사람들도 있다. 베를린은 어쨌거나 유럽의 중심에 위치한 도시 중 하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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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는 세계 톱클래스 아티스트와 난민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네페르티티 흉상과 우겨넣기 현대미술 전시가 공존하는 도시, 아이웨이웨이와 문화 백수가 함께 오프닝에서 만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란 말이다. 즉, 엘리트와 어중이떠중이가 섞여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잭팟을 기다리는 도시, 미래에 대한 플랜이나 희망 없이도 느긋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도시, 그것이 바로 베를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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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하면 베를린 시민들이 지향하는 바는 ‘슬로우 라이프’이다. 대형 마트의 계산대에서도 동전을 가없이 세고 있어도 누구 하나 눈치 주지 않는 도시, 미래에 대한 어떤 계획이나 비전 없이도 어떤 압박감 없이 살 수 있는 분위기의 도시, 느린 템포의 리듬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곳이 베를린이다. 섹시하고 뜨거우며 힙한 도시라는 이미지의 외피를 깨고 난 후 베를린을 살펴보면 오히려 투박하고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들 수 있다. 시종일관 젠체하는 런더너들이나 파리지앵과는 달리, 베를리너들은 상당히 인간적이다. 

만약 당신이 길거리에서 울고 있거나 곤경에 처했다고 한다면 그들은 절대로 당신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찾은 베를린의 매력은 오히려 인간미 넘치는 베를리너들에게 있었다. 무작정 전시회를 찾은 내가 전시회 티켓이 없어서 쩔쩔 맸을 때, 뒤에서 흔쾌히 남는 티켓을 건네 준 사람들도, 깨진 마음을 움켜쥐고 전철에서 훌쩍이던 나에게 따뜻한 위로와 관심의 눈길을 건넸던 사람들도 모두 마음 따뜻한 베를리너들이었다. 

그러니 베를린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들이 깨진 후에도 베를린에 대해 옹호할 수 있는 여지는 남는다. 역시 공정한 마음으로, 이 특별한 도시에서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유일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들이 남아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베를린에서는 유럽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하다고 여겨지는 언더그라운드 문화들이 뿌리 내리고 있다. 클럽 문화, 바 문화, 벙커 문화.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는 말 그대로 ‘벙커’가 존재한다. 나치 정권 때 폭격에도 안전할 수 있는 요새로 만들어진 벙커. 불명예스러운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 1980년대에는 바나나,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 저장소로 사용됐다. 아직도 건물 외벽에는 바나나 그래피티가 남아 있다. 그러던 중 1990년대에는 베를린의 가장 핫한 테크노 클럽(겸 섹스 클럽)으로 활용됐고, 2000년대 들어서는 유럽 현대미술의 큰 손, 보로스 패밀리에 의해 전격 채택되어 아트 컬렉션으로 활용되고 있다. 벙커의 꼭대기 층에는 펜트하우스가 설립되어 보로스 패밀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벙커를 벤치마킹한 베를린의 가장 핫한 클럽이 바로 그 악명 높은 버케인(Berghain) 클럽이다. (이 클럽에 관한 기사는 10월 <파운드 매거진>에 기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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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가장 큰 공원, 서울로 치면 서울숲 정도 되는 티어가든(Tiergarten)이라는 공원이 있다. 이 공원 안에 있는 베를린 최대 럭셔리 스파, 바발리 스파(Vabali Spa)라는 곳이 있다. 발리 식 리조트로 꾸며진 스파 안에 야외 풀장과 사우나, 온천, 마사지를 즐길 수 있는 여느 스파와 비슷하지만 한 가지 남다른 규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우나와 수영장 시설을 이용할 때는 ‘Textile Free’, 즉 온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실제로 이용해 본 바, 전혀 퇴폐업소나 요상한 분위기라기보다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우나를 이용하고, 누가 벗든 말든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오히려 젊은 커플들이 데이트 장소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런 누드 문화는 동베를린에서 비롯되었는데, 통일 전 사회 체제에 저항하는 의미를 담아 나체로 시위를 하거나 공공장소에 나체로 등장하던 문화가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스파 외에도 베를린 안의 호수에서 벌거벗고 수영을 하거나 거리를 맨발로 활보하는 사람들도 종종 본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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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 겨울이 왔다. 추석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공기가 차가워지더니,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지고 거리는 스산해진다. 매일같이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털모자와 외투를 꺼내 입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간다. 그러는 한편 오늘도 황금 인장을 찬 베를린의 천사는 지상 저 높은 곳에서 이것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조숙현 
디아스포라 스토리 채집자, 저서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 <서울 인디 예술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