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of Art
Berlin,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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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내의 중앙에는 거대한 사이즈의 정원 티어가든(Tiergarten)이 있다. 브란덴부르크문을 마주하고 있고 큰 규모에 특히 호수가 아름다운 곳이어서 여름날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러누워 있거나 탁구를 치거나 하이킹을 즐기는 곳이다. 이 아름다운 공원 벤치에서 문득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지켜봤는데, 넌 너무 의존적인 것 같아. 그리고 나에게 너무 집중해 있어서 가끔씩 숨이 막혀. 내가 마치 작은 딸을 돌보는 아빠가 된 것 같은 기분이야. 그리고… 넌 딱히 이 도시에 흥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아. 베를린에 대체 왜 온 거야?”

이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이 도시에 왜 있느냐고? 너, 바로 너, 그래 너 때문에! 난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장장 12시간을 날아서 이 도시에 도착했다. 인천-프랑크푸르트-베를린으로 오는 과정에 비행기가 두 번을 연착했다. (베를린은 인천 직항이 없다.) 이 고생을 해서, 서울에 있는 나의 삶을 잠시 중단시켜가며, 이곳까지 날아왔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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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시작된 만남
우리는 서울의 한 갤러리 오프닝에서 만났다. 그의 사진 전시가 열리던 날이었다. 사실 나는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사전 정보가 없었고, 갤러리 큐레이터와 프로젝트 협업 이야기도 나눌 겸, 겸사겸사 들른 것이었다. 그는 사진 작가였고, 한국계 독일인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인 입양아였다. 태어난 지 한 살이 되기도 전에 대구의 한 보육원에 버려졌다고 했다. 외모는 한국인이었지만 한국어도 못하고, 한국인의 정서도 찾기 힘들었다. 

한국을 여행하면서 찍었다는 그의 사진들은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색채를 띠고 있었다. 우리는 한 눈에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렸고, 그가 베를린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짧은 기간 동안 불꽃같은 연애를 했다. 그는 대체로 과묵하고 차분했지만 옆에서 함께 길을 걷다 보면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알 수 없는 확신도 느껴졌기에, 우리는 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다음에는 그가 있는 도시, 베를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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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으로 갔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순정 만화처럼 베를린 테겔 공항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비누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긴장한 표정으로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를 공항까지 마중 나왔다. 공항에서 그의 집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우리는 자석처럼 꼭 붙어 있었다. 그것이 불과 일주일 전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상처 받은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며 남아 있는 품위를 최대한 발톱으로 무장하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 니가 그렇게 부담을 느낀다면 우리 서로에게 거리와 시간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게 언제냐면, 바로 지금부터 어때?”

그렇게 황급히 티어가든을 빠져나왔다. 브란덴부르크문을 가로질러 포츠담 광장으로 향했다. 내상이 서서히 발현되어 오고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머리는 어지러웠다.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이상기후로 인해 베를린의 여름은 쌀쌀했다. 준비해간 가장 따뜻한 옷으로 옷깃을 여며도 찬바람이 느껴졌다. 한국은 살인적으로 덥다는데.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 간다는데. 그런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마도 최악의 시나리오일거야. 생각을 해야 한다. 정교하게. 이제 어떡하지? 나의 로맨틱한 순간들이 서바이벌 게임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는 일말의 일리가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그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다. 나는 그의 집에서 얹혀살고 있었고, 그가 정해주는 메뉴로 밥을 먹고, 주말에는 그의 손에 이끌려 플리마켓으로 갔다. 그가 사준 스웨터가 없었더라면 지금은 얼어 죽었을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부터 나를 초대해놓고 이렇게 취급하는 그의 태도는 부당하다. 하지만 베를린에 대해 무심했던 나의 태도는 반성할 만하다. 베를린까지 와서 한 사람을 통해서만 도시를 접한다는 생각은 나이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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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섹시한(Poor But Sexy)”. 베를린 시장의 입에서 나온 이 매혹적인 슬로건은 전세계 아티스트들을 이 도시로 집합시켰다. 보통의 도시에서 예술가들이 차지하는 비율에 비해 베를린에서 차지하는 아티스트의 비율은 월등히 높다. 공식적인 집계는 없지만 베를린 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 둘 중 하나는 예술가일 확률이 높다. 예술가들은 왜 베를린으로 모일까? 답은 간단하다. 베를린은 싸다. 집세와 식료품 물가 등이 월등히 저렴하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400유로 정도면 방 하나 월세는 낼 수 있다. 먹는 것과 입는 것 등등도 대충 따져 봐도 서울보다 싸다. 그렇지만 여전히 현대예술의 중심지이고 젊은 예술가들이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파리와 런던에서 살인적인 집세와 물가로 몸과 마음을 축내가며 불안한 미래에 베팅하는 것보다는 베를린에서 생활하고 작업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또한 베를린은 아직 실험정신과 저항정신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생 초짜 예술가도 개인전을 하는 것이 가능하고, 예술가들에게 비자도 (다른 유럽에 비해) 관대한 편이다. 예술가들이 베를린을 선택하는 이유는 충분히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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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도시
그래서, 내가 보고 느낀 베를린은 대체 어떤 도시인가 하면, 음, 베를린은 좀 시간을 들여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베를린 시장의 구호는 절반은 맞다. 베를린은 가난하다. 베를린에서 가장 힙하다는 지역을 가도 런던이나 파리 등 유럽 대도시의 부유한 구역에서 풍기는 허세와 ‘젠체’의 분위기는 느끼기 힘들다. 그들은 그냥 가난하다. 제멋대로 옷을 입고(거적을 걸쳐 입고), 단 돈 1유로라도 아끼고 또 아낀다. 

그 모습은 내 눈에는 전혀 섹시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방인에게 놀라울 정도로 오픈되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베를린에서는 모두가 이방인이다. 이런 생각은 금요일 밤 베를린 시내 전철을 타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모두가 제각각이다. 푸른 눈 색깔과 아이섀도, 터키 목걸이로 색을 맞춘 멋쟁이 할머니, 자전거로 바이크 라이프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키다리 대학생, 차도르를 빈틈없이 걸친 것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여고생들과 똑같은 톤으로 킬킬대는 아랍인 여학생들, 그리고 내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무시무시한 문신의 게이 커플들. 어떻게 저런 색으로 염색할 생각을 했을까, 딱한 생각이 들 정도의 한심한 색깔로 물을 들인 펑크족. 이 사람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카테고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물론 이 무리에 우리 커플도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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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Flea Market 
나는 브란덴부르크문을 지나, 유대인 메모리얼을 통과하여, 플리마켓으로 향했다. 때는 일요일. 일요일은 베를리너들에게 빅 플리마켓 데이이다. 베를린에는 6~7개의 메인 플리마켓이 있는데,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열린다. 이곳에서는 이 도시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다. 

LP판과 책, 부엌용품과 소파. 기중에는 정말 희귀한 앤티크 소품과 고급 가구들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놀라울 만큼 싸다! 플리마켓에는 언제나 맥주와 음료수, 맛깔나는 푸드 트럭들과 음악 공연이 함께 있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잠시 잊을 수 있다. 나는 좀 감각 있게 생긴 아가씨가 들고 나온 빈티지 스웨터에 눈독을 들이다가, 옆 부스에서 마음씨 좋게 생긴 할머니로부터 티팟 세트를 단 돈 20유로에 득템했다. 나 이 도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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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의 밤
그러는 와중에 남친으로부터 끊임없이 메시지가 왔다. “미안해, 상처를 줘서.” “나 ‘아직’ 널 좋아해.” “보고싶어”. 등등. 집으로 향했다. 그는 타일벽이 둘러진 부엌에 앉아 연보라색 데이지 꽃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우리가 좋아하는 Rothaus Pils. 평범한 가격의 맥주인데 긴장을 풀어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춤추러 갈래?” 

베를린은 전 세계 클러버들에게 로망의 도시 중 하나이다. 세상에서 가장 쇼킹한 클럽이 있기 때문이다. 이 클럽은 몇 가지로 악명이 높다. 일단은 세상에서 가장 싸가지 없는 문지기가 있다. 이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전세계 관광객들이 몇 시간이고 긴 긴 줄을 선다. 하지만 대부분은 문지기의 고개 한 번 까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럼 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비밀이 누설되면 모두가 클럽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다만 클럽에 가기 전에 남친에게 의상을 점검 받았다. 

그는 “섹시는 언제나 웰컴이지”라고 해서 귀여운 나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었더니 “Big No No.”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쩔까 하다가 한국에서 너무 더울 때 입었던 유카타가 있었는데 그걸 입으니까 “Oh, Yes.” 우리는 DJ 인맥을 동원해 게스트 리스트의 힘으로 가뿐히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자 공항보다 삼엄한 검열 과정이 있었다. 가방에 카메라가 있는지 확인하고 핸드폰에 스티커를 붙이는 등.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무심코 웃었더니 “이 여자애 왜 웃니?”라고 엄청나게 소리를 질러대서 기가 죽고 기분이 상했다. 

내부 분위기는 게이 클럽에 가깝다. 헐벗은 남녀들이 뒤엉켜 춤을 추는데 게이의 비율이 높다. 두 층에 걸쳐서 스테이지와 바가 있는데, 여기서는 유럽의 인기 클럽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복도 사이드 쪽에는 약에 절어서 헤롱대는 젊은이들이 널부러져 있다. 이들은 보통 금요일 저녁에 입장해서 월요일 아침까지 이곳에서 환각의 시간을 보낸다. 주말 내내 이어지는 크레이지 파티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오는 유럽 젊은이들의 문화에 관한 논문도 있다. 하이라이트는 화장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불결한 화장실. 남녀 구분은 진즉에 무의미하고, 화장실 문이 열리면 잽싸게 남녀 혼성 3~4인 1조가 들어가 절대로 안 나온다. 밖에서 문을 차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 그제서야 나온다. 

클럽을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면서 우리는 다시 꼭 붙어 있었다. 내 머리는 아직 복잡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도시는 나의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운 곳이다. 세계 최고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와 DJ가 공존하는 곳, 손꼽히는 현대미술 비엔날레와 대안 공간 페스티벌이 같은 기간에 열리는 곳, 낮에는 플리마켓에서 빈티지 소품을 구경하고 밤에는 크레이지 피플들의 행태를 구경할 수 있는 곳. 가장 언더적인 것과 가장 하이컬처가 이렇게 자유롭게 섞여 있는 도시가 현실에서 가능한 도시가 베를린 말고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