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바질 국물
잇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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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한 번, 30대에 두 번. 합정에 있는 그 회사를 참 오래, 여러 번 다녔다. <파운드 매거진>을 만들면서도 친정 집 드나들 듯 들렀던 그 회사가 이리저리 이사를 다닌 덕분에 그 동네 이름만 들어도 골목 지도가 머릿속에 쫙 펼쳐지는 지경까지 왔다. 그리고 바로 그 회사에서 지금의 그 친구를 만났다. “A를 만난 적이 있냐”고 물어봤던 8년 전 상사의 얼굴과 말투도 여전히 기억 난다. 

일로 만난 A는 더 오래 알고 지낸 내 다른 친구들만큼이나 취향이 비슷했다. 듣는 것, 입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쓰고 읽는 스타일까지 그랬다. 가장 비슷한 건 모든 음식에 금빛 라거 맥주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커피는 항상 쓴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것, 가장 매력적인 동물은 고양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등등. (가끔 우리는 골뱅이소면에 맥주를 마시면서 먼저 간 우리의 고양이들 이야기를 하다가 같이 운다.) 

아무튼 여전히 그 회사에 다니고 있는 A가 긴박하게 보내 준 사진을 통해 잇텐고를 처음 알았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녹색 국물의 일본 라멘과 새빨갛고 탐스러운 토마토조림. 친구는 그 녹색 국물의 라멘이 정말 맛있다고 했고, 젊은 사장들도 잘 생겼다고 했다. 잇텐고를 가 볼 이유가 두 가지나 생긴 셈이었다. 워낙 입맛이 비슷하니 맛이나 퀄리티를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A와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건 혜택이자 보너스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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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텐고는 지난 7월 11일에 문을 열었다. 합정동 골목에 자리한 작은 가게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좋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일본스럽다. 그렇다고 과하게 치장한 느낌이 아니고, ㄷ자로 둘러진 테이블에 조용히 묻어서 행복하게 식사를 할 만한 공간이다. 바 테이블 같지만, 테이블과 의자가 높지 않아 편안하게 앉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식사를 파는 집 치고 어둡게 해 놓은 실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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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를 기다리며 작은 맥주 한 병과 키누코시 토투(참깨 드레싱을 올린 연두부)를 주문했더니 인심 좋은 주인장이 너무 예뻐 건드리기 아까운 토마토 쯔께모노(시원하고 달콤하게 먹는 완숙 토마토)를 선물로 내어준다. 라멘과 같이 주문했어도 좋았을 법한 사이즈의 사이드 메뉴들은 맥주 안주로도 참 좋았다. 회사에서 빠져 나온 A의 등장과 함께 라멘을 주문했다. 가장 기본의 키츠네, 빨갛고 매운 국물의 키요마사, 그리고 방문의 이유였던 미도리카메가 금세 테이블에 차려졌는데, 향긋한 바질 향과 함께 등장한 미도리카메는 보기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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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에 페스토로 많이 먹었던 바질을 라멘으로 먹어도 이렇게 괜찮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점심에 라멘을 먹으면 밥도 무료로 준다고 하는데, 진짜 바질 라멘 국물에 밥을 말아도 끝내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워낙 매운 걸 좋아하는 나는 키요마사도 빛의 속도로 먹었는데, 청양고추의 매운 맛이 자꾸만 국물을 찾게 만들었다.

잇텐고는 여러 이유로 편안한 라멘집이다. 무엇보다 메뉴 구성이나 가게 분위기가 그렇다. 7천 원짜리 라멘을 먹으면서도 좋은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음악 선곡에 신경을 쓰고, 브레이크 타임에 늦은 점심을 스스로 끓여낸 라멘으로 먹으면서도 “맛있다!”는 혼잣말을 하는 청년 사장님들이 그 곳에 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비 오는 날엔 비가 와서,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이 불어서 찾아갈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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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마포구 포은로 11 (오후 3시~5시 브레이크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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