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couver, Canada
Summer In Vancouver

IMG_1085.jpg

누군가 밴쿠버의 매력은 여름에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밴쿠버의 겨울은 거의 매일 비가 온다. 겨울의 밴쿠버가 ‘레인쿠버(Raincouver)’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 이유다. 나는 비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매일 비가 온다면? 생각만 해도 우울하다. 

참 지겹게도 비가 온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들이 얼마나 여름을 기다리는지 알 수 있다. 맑은 주말이면 모두가 바다로 모인다. 해변에 누워 태닝을 하고 가족,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비치 발리볼과 수영을 즐긴다. 처음 밴쿠버에 왔을 때는 쌀쌀했다. 그런 날씨에도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해변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그들에게는 일상이었겠지만 신기했던 모습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나도 그들과 함께 해변에 누워 주말을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서울에서는 맘먹고 시간을 내야 갈 수 있는 곳이 바다였는데 이곳에서는 일이 끝나자마자 달려 갈 수 있다. 혼자 앉아 있으면 옆에 앉아 있던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기도 한다. 대화의 시작은 “어디서 왔니?” 아니면 “일본인? 한국인?”이라는 질문이다. 이제는 인사말과 다름없이 느껴지는 것들이다. 

서툰 영어지만 서로 배려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은 친구가 되는 일도 생긴다. 여행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만남이 주는 재미는 언제나 자극이 된다. 아름다운 풍경, 새로운 친구, 이 두 가지가 내가 이곳 생활에서 얻은 제일 큰 것들이다. 그리고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도.

IMG_0477.jpg

이 해변의 반대편에는 요트 선착장과 수상비행기 선착장이 있다. 이 곳 사람들은 요트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란히 정박해 놓은 요트와 그 뒤로 펼쳐진 바다와 하늘을 보면 하늘색과 하얀색의 깨끗한 조화가 질리지 않는 그림이다. 조금 호화스러워 보여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요트를 소유하지 않아도 요트를 빌릴 수 있고 수상비행기를 타고 구경하는 코스도 있다. 

IMG_1124.jpg

요트 선착장 바로 옆에 스탠리파크(Stanley Park)가 보인다. 다운타운에서 잉글리시 베이(English Bay)쪽으로 튀어나온 반도에 있는 이 공원은 400만㎡가 넘는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원이 크고 넓어서 다 돌아보려면 걷기보다는 셔틀버스, 관광마차, 자전거 렌탈 등으로 둘러봐야 한다. 이 곳엔 원래 캐나다 인디언 부족들이 살았었지만, 1859년 미국과의 전쟁을 대비해 군사기지로 이용되었고 1888년 밴쿠버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개방됐다. 

다운타운과 이어져 있어 조깅코스, 자전거코스 등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번잡한 도시바로 옆 공원에서 조깅하는, 영화에서나 봤던 그림이 이곳에선 일상이다. 가까운 거리에 해변과 공원이 있다는 것만큼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 또 있을까.

IMG_0591.jpg

다운타운에서만 지내다 보면 가끔 지루할 때가 있다. 밴쿠버 다운타운은 생각보다 좁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가는데 30분 정도. 일하러 가는 길은 똑같고 활동 범위는 좁아졌다. 일 끝나도 특별히 갈 곳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와 공간을 찾고 싶어 그랜빌 아일랜드(Granville Island)와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에 갔다. 그랜빌 아일랜드는 원래는 공장과 창고가 있던 낡고 오래된 공장 지대였지만, 1970년 개조를 해서 다양한 숍과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개성이 뚜렷한 물건을 파는 작은 상점들, 작은 장신구나 독창적인 공예품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뮤지컬과 콘서트 등을 상영하는 아트 클럽 극장도 있고 여름에는 재즈 페스티벌이나 포크 뮤직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한다. 그랜빌 아일랜드는 다운타운에서 버스로 이동할 수도 있고, 아름다운 무지개색 통통배로 이동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랜빌 아일랜드를 좋아하는 건 예쁜 섬이기 때문이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다운타운 모습이 인상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에선 한강에서 야경 보는 것을 좋아했다. 

IMG_0998.jpg

한강변에서 바라봤던 건너편 풍경들의 느낌을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랜빌 아이랜드에는 퍼블릭 마켓(Public Market)이 유명하다. 다양한 식재료를 파는 곳인데 신선한 채소와 과일, 육류와 생선, 햄과 치즈가 가득해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행복해진다. 요리와 음식을 사랑하는 나는 이 곳에 올 때는 지갑을 두둑이 채워온다. 장 보는 것도 행복하지만 맛있는 피시 앤 칩스도 절대 빼 놓을 수 없다.

IMG_1198.jpg
IMG_0623.jpg

그랜빌 아일랜드를 구경하고 나서 버스를 타고 15분쯤 가면 예쁜 길 모퉁이 카페를 기준으로 메인 스트리트가 시작된다. 오래된 서점, 빈티지 숍, 예쁜 카페, 아기자기한 소품 숍 등이 많아 힙한 동네로 떠오르고 있다. 100년이 넘은 건물들이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며 아직도 자리를 잡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100년 전 같은 직종으로 대를 이어 운영하는 숍들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각 상점마다 뚜렷한 자기의 색을 가지고 있어 아주 즐겁게 구경할 수 있다.

밴쿠버에 도착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낸 적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매일 연락하는 친구들인데도 다들 편지를 보내 달라며 주소를 보내왔고 그 엽서들 대부분을 메인 스트리트 상점가에서 샀다. 타지에 나오면 편지를 쓰고 싶어지고, 또 누군가 나가있으면 편지를 써야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그를 생각하며 고른 특색 있는 이곳의 엽서에 정성스럽게, 혹은 평소에 안했던 말들로 편지지를 채워 우체통에 넣으면서 뭔가 부끄러운 기분과 기대감의 묘한 감정에 참으로 오랜만에 설레었다. 

IMG_0856.jpg

메인 스트리트 상점가는 다운타운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데도 이국적인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숍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레코드를 판매하는 곳이다. 밴쿠버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레코드샵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나는 ‘Neptoon Record& CD’s’를 좋아한다. 오래된 레코드판부터 요즘 팝 가수들의 노래까지 다양하게 볼 수 있는데, 한번 들어가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되는 샵의 분위기가 나를 단골이 되게 했다. 한장 한장 레코드를 넘기다 좋아하는 앨범을 발견했을 때에는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 같은 소소한 기쁨을 느끼곤 한다.

밴쿠버는 거리마다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골목골목 가끔 길도 잃으면서 구경하는 것이 좋다. 밴쿠버에서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나의 이러한 이야기가 우스울 수도, 잘 알지도 못하는 것 일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더 좋은 곳이 분명 많을 테고. 

IMG_0550.jpg

나는 막 이곳과 연애를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난 어떤 생활을 하게 될 지, 계속 지금처럼 이곳을 좋아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갓 시작하는 연애처럼, 그렇게 지내볼 예정이다. 하루하루 여행자의 마음으로 즐기며 지내기로 한다. 즐겁게, 그리고 조금은 가볍게. 오늘도 비가 그치는 대로 책 한권 들고 또 잉글리시 베이 선셋 비치 파크에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