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마이
Chiang Mai
부처가 들어앉은 도시

-여행 (26).jpg

‘이제 당분간은 이렇게 집 앞 공원 벤치에서 느긋하게 담배 피울 여유 따위는 없겠지’. 스스로에 더 솔직하고 싶었다. 혼자 되신 지 얼마 안 된 어머니가 밟혀, 너무 멀리는 말고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눌러 앉기로 한 게 벌써 10년 전 일이다. 

흔한 표현이지만,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다가 이제 좀 숨 돌릴 만 해지니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났다. 해외에 살며 조심해야 할 몇 가지 중 하나에 걸려 넘어진 거다. 똑같이 사악한 돌부리가 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겠기에 결국 다시 짐을 싸야 했다. 내가 내 나라로 다시 돌아가는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고 또 겁까지 나는지. 

‘5월 초인데, 벌써 모기가 있나’ 나만의 의식처럼, 처음 일본에 도착했던 바로 그 나리타 공항을 통해 귀국하기로 했다. 이른 아침 비행기니 남은 짐이나 마저 싸자 싶어 털고 일어서려는데, 메시지가 와있다. “고객님이 예약하신 에어비앤비 호스트 어쩌고…” 맞다. 2016년에는 큰 맘 먹고 2주일 정도 피정 비슷한 자축 여행을 떠나기로 했었다. 반년 전부터 비행기 티켓부터 숙소까지 다 잡아뒀었는데, 정작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이 중대한 이벤트를 정말 거짓말처럼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장롱 밑에서 우연히 찾은 복권이 알고 보니 3등 정도로 당첨되어 있는 느낌이다.

종로구에서 나서 자랐고 취직하고서는 강남구에 눌러 살았으며 결국 신주쿠 한복판에 터를 잡았었으니 항시 주위가 북적거리기는 했다. 음악 듣고 글 쓰는 거나 좋아하던 아이에게는 힘든 환경이었다. 최근 5년간은, 술 한 방울도 못 마시면서, 술집을 했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밤새, 타향살이의 설움이나 아픈 사연, 힘든 이야기들을 주어 담기만 했던 것이 내 그릇에는 좀 과했나 보다. 이번 만큼은 ‘떨어져’ 지내보고 싶었다. 그래서 치앙마이었다. 블로그나 카페 게시판에 등장하는 ‘치앙마이 = 한적해요”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여행 (97) 도비라.jpg

태국, 치앙마이 
치앙마이는 전체 면적이 40㎢나 될까 하는 고도 311m의 분지 도시다. 인구는 15만 명을 넘지 않는다. 도시 한 가운데에는 19세기까지 6세기 간을 독립국 린나왕국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줬던 오래된 성벽과 해자가 남아있고 그곳은 구시가지라고 불린다. 거기서 한 1km 서쪽에, 성밖 신시가지의 주요 유흥가 님만해민이 있다. 태국 ‘제3의 도시’라니까, 나름 머리 속에 그려둔 그림들이 있긴 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좀 소박한 듯 화려한 드라마 속 전원도시 정도를 상상했다.

휴대폰 지도 어플리케이션에 가보고 싶은 곳들을 100개 정도 저장해 두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불교 국가의 주요 유적들을 다 돌아볼 작정으로 동선을 짜보기 위해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온통 ‘맛집’들만 남아있었다. 예전에는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이 있고 그게 바로 나’라고 우기고 다녔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먹은 만큼 살이 찐’ 평범한 중년 아저씨였던 거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낯선 내 모습에 윙크라도 한 번 보내주는 연습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그래도 어버이날은 한국에서 보내야지 싶어, 5월 9일에 출발하는 일정을 짰다. 막장 미드 <엠파이어(Empire)>를 몇 편 연속으로 보다 보니, 금세 치앙마이 공항이란다. 5시간 반을 참았으니 일단 한 모금부터 해결하자. 흡연장소를 찾아 바깥으로 나선 순간 숨이 턱 막혀버렸다. 송크란 기우 축제도 막 끝난 뒤라 막바지였던 건기의 위력을 제대로 실감했다. 건식 사우나 딱 그대로다. 섭씨 38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숫자였는지 우습게 본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여행 (99).jpg

비록 바가지는 씌울지언정 씽씽 달려주긴 하는 방콕과 달리, 여기는 택시가 드물다. 공항에나 몇 대 있다. 용달차에 천막이나 철판을 씌운 생김새의 썽태우나 뒷자리 좌석이 달린 오토바이 개념의 툭툭이 가장 흔한 이동수단이다. 바이크도 하루 200바트면 빌린다. 시내라면 어디든 편도 50바트을 안 넘는다 보면 된다. “공항은 휴지도 비싸다”라는 조언을 곱씹으며 흥정과 발품 팔기는 무슨. 덥고 배고파서 아무거나 잡아탔다. 하필 그 귀한 택시가 걸려 들었다. 공항서 숙소까지 고작 5분이면 되는데 200바트를 냈다. 그래. 누리려면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고, 편하고 시원하게 오긴 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자위해볼 밖에. (1바트는 33원이다)

“수영장은 4층이고, 헬스 클럽은 1층에 있어요. 마시는 물은 문 앞까지 배달해줘요. 빈 통만 문 밖에 내놓으세요. 저도 이 건물에 살고 이 물 마셔요. 아무 염려 마세요.” 빨리 짐 풀고 씻고 뭐라도 먹으러 나가고 싶은데, 이 허리둘레가 1m도 넘는 호스트 아저씨는 좀 과하게 느긋하고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세탁기는 배수관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 1층에 위치한 동전 세탁기를 사용해야 했다. ‘세탁기 구비’라더니 정말 ‘구비’만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번에 고작 40바트니까요. 세제는 이거 쓰시면 돼요.” 웃으며 덧붙인다. 아. 미워라. 되려 이쪽에서 미안하다고 해야 할 판이다. “거기에 10밧 보태면 여기 아르바이트 시급인데 그게 적은 돈이냐?”라고 성질 좀 부려봤다. 그랬더니 이런다. “당신은 여행을 왔고, 여행은 즐기는 거예요.” 부처의 설법인가? 크게 한 방 맞았다. 떨쳐내고 또 채우고자, 스스로에게 상으로 내린 여행인 것을, 단지 너무 더.워.서. 좀 예민해져 있었나 보다.

여행 (96).jpg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인 MAYA 쇼핑센터를 제일 먼저 찾았다.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는, “강남역 몇 번 출구 앞 무슨 제과점 앞” 같은 이정표가 되는 건물인데, 이 쇼핑몰 맞은 편이 소위 말하는 ‘치앙마이의 가로수길’ 님만해민이다. 곧게 뻗은 길 양편으로 세로수길 같은 골목이 열 대여섯 개 있고, 죄다 먹고 마시고 노는 곳이다. 구시가에도 근사한 카페나 레스토랑 천지지만, 한 데 모여 있는 점이 다르다. 공항에 내렸던 당시의 어마무시한 더위는 아니구나 싶었는데 31도다. 38도를 겪고 나니, 31도가 살만하다 느껴지고 또 한밤중에는 바이크 타기에 꽤 선선하다. 게다가 도시 전체가 같이 잠든다. 가정집 불단에 피워둔 향마저 다 꺼진다. 

보통 오픈 및 폐점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관공서 정도가 아닌 바에야 잘 지켜지는 편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자영업 점포들은 대중이 없다. 한 번은 오후 2시경에 젊은 커플이 하는 미용실에 들어갔는데, 자기네 밥 먹는다고 오후 4시에 오라길래, 여기 식으로 넉넉잡고 5시 다 되어 갔더니 이번에는 아주 제대로 ‘사랑’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커튼도 다 안 치고.

그게 또 너무 웃겨서 7시에 다시 갔다. 이번엔 막 저녁을 먹은 뒤 같다. 양치질도 않고 바로 머리를 만져주는데 딱히 싫지는 않았다. 사진 몇 장 보여주며 고르라더니, 20분을 자르고 세팅도 또 그만큼 시간 들여 해준다. 그리고는 달랑 150바트다. 사실 난 마음에 안 드는데, 자기들은 매우 흡족한 듯 난리라서 조금 황당하기는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자기들 첫 외국 손님이라며 심지어 SNS에 올리겠다 하기에 기념 포즈도 취해줬다. 3주가 지나도록 답장도 아무 소식도 없는 그들이지만, 딱히 놀랍거나 섭섭하지는 않다. 그런가 보다 하면 그게 다 추억이다.

-여행 (123).jpg

치앙마이는 방콕보다 20퍼센트 정도 물가가 더 저렴하고, 구시가지는 님만해민 쪽보다 또 얼마간 더 싸다. 그래서인지 동쪽 성문 테페 게이트 근방에서는 흡사 까오산 로드에 와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젊은 백패커들까지 왕왕 목격된다. 대신, 현지인들은 어딜 가나 낮엔 잘 안 보인다. 그나마 사람 구경 하려면 해가 질 즈음이어야 한다. 

지금은 더워서 없지만, 겨울 밤에는 10도까지 내려가서, 또 사람이 없단다. 사람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온 거지만 막상 너무 없으니 이 또한 심심하다. 그래도 주말에 펼쳐지는 나이트 마켓이나 되면 좀 흥청거리고 길도 제법 막힌다.

서비스업으로 먹고 사는 방콕과는 또 달라서 영어가 공용어로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긴 대화 오갈 일도 별로 없고, 그냥 서로 웃으면서 단어 몇 개만 주어 섬기면 된다. 노골적으로 관광객 주머니 털려는 사람도 적어서, 이것 저것 권유는 일단 하는데 마치 외워서 하는 대사마냥 영혼이 없다. 주판 굴러가는 소리 따위 안 들린다. 그래서 좋았다. 머무는 2주 내내 팁 달라는 소리도 못 들었다. 그냥 잘 쉬다 가면 되는 곳이다. 덥고 지치면 아무 데나 들어가서 땡모반(수박 주스)이나 치앙마이 특산 브랜드의 진한 냉커피 한 잔 하며 쉬었다 나서면 된다.

-여행 (94).jpg

나이롱 스타킹 같은 시간
해외 여행 시에는 현지 친구를 사귀자는 주의다. 관광객들에게는 불모지인 숨은 명소를 알아내려는 얕은 수작이라기보다, 사람 사는 모습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고픈 마음에서다. 이번에는 마사지사와 친해졌다. 영어가 능숙해 의사소통이 수월했던 점이 한 번에 2시간이나 걸리는 타이 마사지를 이틀 걸러 한 번은 찾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살짝 무섭게 생겨서 처음 몇 번은 지갑과 휴대폰을 어떻게 간수해야 하나 했는데, 나중에는 살아온 이야기까지 할 정도로 친해졌다.

그런데 시간 관념이 별로 없다. 딱 나이롱 스타킹이다. 2시에 오라더니 30분을 기다리게 하고, 2시간 코스인데, 3시간 해주기도 하고 이런 식이다. 두 번 정도는 다음 일정 때문에 “미안한데, 오늘은 1시간만 하겠다” 했고, 그 때마다 그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묻는다. “너는 2주일이나 여행을 와서 왜 항상 다음 일정을 정하고 시간을 따지냐? 항시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 슬퍼 보인다.” 그래. 분명 슬퍼 보인다고 했다. 나름 내려놓고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친구 보기에는 그렇지도 않았나 보다. 뭉친 근육이 풀릴 기미가 안 보이기에 바로 알아봤다나. 

마사지 끝나면 느긋하게 차도 마시고 해야 코스가 전부 끝이 나는데, 항시 원 샷으로 들이키고 헬멧 챙겨 바이크 타러 달려나가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했다. 실은 원고거리도 2개나 싸 들고 온 여행이라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했다. 예약 손님도 있을 텐데, 시간 개념이 확실하지 않으면 악순환이 꼬리를 물 수 있을까 봐 걱정이라고 했더니 “손님은 그런 생각 하는 거 아니야”하며 웃는다. 

도시 곳곳에 널린 사원들에 저마다 부처가 앉아있고, 시내에서 40분을 달려야 도달하는 해발 1677m의 수텝산 정상에 솟은 왓 프라탓 도이수텝에는 사리가 담긴 탑까지 있는데, 그 순간만큼은 이 친구가 부처로 보였다. 굳이 거기까지 두 번이나 찾아가 명상까지 하고 온 자신이 한 번 더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보니 “언제까지” 또 “빨리” 해달라고 재촉하는 사람은 아무도 못 봤다. 치앙마이 사람들에게는 하루가 25시간쯤 되는지도 모르겠다.

-여행 (109).jpg
-여행 (126).jpg

빠르게 살지 않는 곳
어느새 마지막 밤이 왔다. 10바트 짜리 찹쌀밥에 20바트짜리 쏭땀(태국식 김치)이랑 꼬치구이를 사 들고 와서 먹었다. 밤 10시면 편의점과 노점상 일부, 그리고 아주 간혹 발견되는 심야 영업 주점 말고는 다 불이 꺼지는 곳이라서 보다는, 그간 냉장고에 쌓인 것들을 깔끔하게 떨이해서 치우고픈 마음이 더 커서 그랬다. 나름의 의식처럼, 그간 찍어온 사진들을 넘겨 보고 있자니, 왜 하나 같이 갑갑하고 갇힌 느낌이 들던지. 빌려온 카메라로 찍어 손에 익지 않아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내게 보이는 데로 보고 담았더니 그리 된 것뿐이리라 싶다. 

창문을 열었다. 그새 우기가 시작되어 끈끈하지만 못 견디게 덥지는 않고, 비릿한 밤공기도 그냥 좋다. 베란다 아래에 보이는 민가에서는 가족 여덟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에어컨도 없는 자그마한 집 평상에 둘러앉아 맨날 참 오래도 먹는다. 무슨 할 말은 그렇게 또 많은지 모르겠다. 지나가는 스콜에 젖은 빨래를 걷어 챙기는 일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 날 밤에는 “에어컨 없이 자보기”에 도전했는데 의외로 힘들지 않았다. 저 사람들 보기에는 에어컨이 없으면 잠을 못 이루는 삶이 되려 불쌍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여태 안 보였던 건데, 집 한 가운데에 나무가 한 그루 솟아있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을 둔 채로 지은 집이라 그런지 생뚱 맞게 보인다. 그 뿐인가? 가로수들도, 사람 다니기 불편하게 거리 한 가운데를 가로 막아 박혀있기 일쑤다. 역시나 원래 것을 그대로 두고 길을 내서 그럴 거다. 덕분에 장애물 피하기 게임처럼 길을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쁠 때 뛰어다니지도 못 하… 아. 맞다. 이 도시 사람들, 그런 식으로 바쁘지는 않지? 

생각과 달리, 길도 안 막히는 곳임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여유 시간을 많이 잡아야 할 경우가 많다. 방향만 같으면 태워주는 식이라, 빙빙 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질 것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귀국하는 날 아침 공항으로 향하면서도, 태울 사람 태우고 내려줄 사람 내려주고 하는 운전기사 아줌마의 넉넉한 마음씨 덕에, 막판에 시내 관광을 풀 코스로 한 번 더 할 수 있었다. 

비행기 시간 촉박하게 길을 나선 외지인들은 여차하면 큰 낭패를 볼지도 모르겠다. 님만해민 쪽에서 한국 음식점을 하시는 노부부가 두고두고 생각난다. 촌스럽게도 딱 1주일 지나니까 김치가 먹고 싶었고, 마침 점심 뷔페라서, 별미인 제육 볶음까지 양껏 먹고 나오는데 “더운데 돌아 다니려면 더 드셔야 해요”하며 붙잡는다. 김치 사러 온 교민들에게는 묻지도 않고 퍼주신다. 저울은 그냥 폼이다. 이게 수완이시면 진짜 대단한 건데, 그냥 공력이고 또 세월의 힘이라 믿고 싶다. 두 분 다 겉으로는 여리고 순해 보인다. 일부러라도 오가며 자주 지나쳤는데, 바쁘건 한가하건 항시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를 않는다. 또 다시 부처를 보았다.

-여행 (81).jpg

다시 돌아온 한국
비행기 엔진이 다 꺼지기도 전부터 안전벨트 풀고 짐을 내리며, 고작 몇 시간 밀린 휴대폰 통화에 열심이어야 하는 우리네 생활방식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시각에 따라서는 그게 또 역동적이고 전투적일 수 있으니까. 그냥, 그냥,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다시 그런 나라로 돌아왔으니 적당히 맞춰가며 살긴 해야겠지. 마음이, 무겁다기보다는 좀 가라앉는 느낌이다. 

새벽 3시에 비를 흠뻑 맞고 한국 집에 들어왔다. 기념품도 안 사온 아들에게, 어머니는 별 말씀이 없다. “고생했네, 우리 아들. 새로 김치 담아 뒀어. 일단 좀 자고, 일어나면 밥 차려 줄게.” 하더니 도로 주무시러 들어가신다. 마른 수건과 갈아입을 티셔츠는 잘 개어져 놓여 있었다. 왜 일본에서 돌아온 건지, 어디를 어떻게 들러서 온 건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할건지, 궁금한 것이 어쩌면 나보다도 더 많으실 텐데 말이다. 그래도 ‘한적한’ 곳에서 많이 비우고 ‘한적하게’ 돌아왔으니, 걱정은 좀 덜 끼쳐드릴 수 있을 듯싶어 내심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