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ts are Ev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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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봄이 오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는 건,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손톱만한 초록의 잎사귀가 올라올 때다. 그렇게 잎이 다시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또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은 꽤 많은 시간과 추억을 식물과 공유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달 이슈의 주제는 이렇게 사계절 내내 묵묵히 우리 곁을 지켜온 ‘식물’에 관한 이야기다. 멀리 울창한 숲 속에서 찾아 낸 것이 아닌 자주 가는 카페와 술집에서, 누군가가 그려 낸 그림 속에서, 우리 식탁 위를 감싸고 있는 식탁보 위에서도 식물의 존재를 일깨워 낼 수 있었다. 

시크한 식물 실험실 보타라보(Bota Labo)의 ‘정희연’ 아름다운 꽃 안에 서정적인 감성을 담은 아티스트 ‘백은하’ 마음껏 버려도 되는 친환경 포장지 ‘에덴스 페이퍼(Eden’s Paper)’ 식물을 패브릭에 수놓은 ‘바스큘럼(Vasculum)’ 도심 속의 작은 정원 ‘벌스(Vers)’ 꽃과 술이 함께하는 ‘플라워 진(Flower Gin)’ 아름다운 꽃의 향연 ‘플로바리스(Flobaris)’가 그 주인공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 해 온 식물, 그들이 건네는 위로와 기쁨이 여기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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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다는 것
Jung, Heayeon

정희연은 10년차 플로리스트다. 식물 실험실(Botanic Laboratory)의 줄임말인 ‘보타라보’라는 이름처럼 그녀의 작업은 새롭고 생생하다. 그런 그녀에게는 꿈이 있다. 모든 집에 식물이 하나씩은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시크한 방향으로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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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시작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는데 전시가 많아서 꽃 선물을 자주 해야 했어요. 근데 꽃을 한 송이를 사든, 열 송이를 사든 마음에 안 드는 포장을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꽃집에 가면 항상 “이거는 이렇게 해주시구요. 리본은 빼주시구요” 요구 사항이 많았어요. 한 마디로 진상 손님이었죠. (웃음) 어느 날, 그게 싫어서 꽃상가에서 꽃을 사다가 꽃다발을 만들었는데 예쁘고 안 예쁘고를 떠나서 제 마음에는 들었어요. 물론 테크닉이 없어서 꽃집에서 만들어준 것처럼 풍성해지지는 않더라구요.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쉴 때였는데 청담동에 유럽피안 꽃꽂이 수업이 처음 생긴 거예요.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결국은 직업이 됐어요. 해보니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이후에 미국에서 공부를 좀 더 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꽃집에서 일을 하다가 10년 전에 독립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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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타라보 스타일
한 가지의 스타일로 규정되지 않는 게 보타라보의 장점인 거 같아요. 무엇보다 작업을 의뢰한 사람이 원하는 걸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반 소비자가 꽃을 산다면 어떤 용도로 쓸 건지, 누구에게 줄 건지, 받는 사람의 성별이나 특징 등을 먼저 물어봐요. 어쨌든 돈을 내고 물건을 사가시는 거기 때문에 자신이 지불한 비용에 대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게 1번인 거 같아요. 기업과 일을 할 때는 꽃이나 식물이 적재적소에 사용될 수 있게 제안하고 있어요. 꽃이 많이 있어야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한 송이의 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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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주는 감동
이 일을 하면서 기쁠 때는 작업실을 다시 방문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식물이 있었는데 없으니까 너무 심심해요. 꽃이 안 보이니까 너무 외로워요”라고 얘기할 때예요. 사람들이 식물이 주는 감동이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참 좋은 거 같아요. 

5천원의 행복
식물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면서 좋은 점이 많아요. 일단 수요가 많아지다 보니까 수입이 되지 않던 다양한 종류의 외국 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가장 큰 건 꽃이 대중적으로 좀 더 친근해진 거 같아요. 예전에는 사치스러운 소비품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요즘은 커피 한 잔 사서 들어갈 때 꽃도 한 송이 사갈까 하는 마음들이 생기는 거 같아서 좋아요. 장미 한 송이 5천원이면 사거든요. 집에 놓으면 적어도 일주일은 볼 수 있어요. 5천원으로 일주일 동안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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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듦을 받아들이는 일
꽃과 함께 하면서 시간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시드는 순간도 아름다워 보이는 눈이 생기기도 했구요. 사람이 나이가 들고, 꽃이 시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살아있는 꽃이 시들지 않으면 이상한 거죠. 사과도 오래 두면 썩어요. 사람도 똑같이 시간이 지나면 늙고 변하는 게 맞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 거 같아요. 어르신들은 꽃이 시드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쓸쓸하다고 하시더라구요. 바꿔서 생각하면 저렇게 예쁜 것들도 금방 시들어 버리는데 내가 늙는 것도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10년 전에 처음 생각했던 대로 일반적이지 않는 꽃집으로 계속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크거나 작거나, 비싸거나 싸거나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식물이 주는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고, 저 집에 가서 꽃을 사보고 싶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건 제가 풀어야할 숙제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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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람, 꼭 사람
Baek, Eunha

마른 꽃잎이 할머니의 치맛자락이 되고, 연인의 달뜬 몸이 되며, 가수의 푸른 드레스로 변신한다. 올해로 16년째, 꽃그림 작가 백은하의 손을 거치면 꽃은 사람이 된다. 그녀가 만들어낸 
‘꽃 사람’들이라면 함께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잘 알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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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_Melting, 마른꽃과 펜 드로잉, 2007

16년 전 책갈피
책이나 수첩에 꽃을 말려놓는 게 오랜 습관이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책갈피에 꽂혀있는 나팔꽃 하나를 보게 됐는데 그 모습이 딱 외출하는 여자 같았어요. 바람에 치마가 흩날리고 있었는데 외출하는 여자의 기분이 이렇겠구나 싶더라구요. 여자의 얼굴을 그리고, 손을 그리고, 신발을 신겨주고, 가방을 들려주고, 그게 첫 시작이었어요. 16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장난처럼 꽃들이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 거죠. 

꽃그림이 되다
저희 남편이 “어느 페이지에 어떤 꽃이 있는지 알고 있느냐”고 묻길래 “그걸 왜 알아야 되냐”고 했던 적이 있어요. (웃음) 제가 꽃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놀래요. 거칠게 다루는 편이거든요. 채집으로 얻거나 시장에서 사온 꽃들을 뜯어서 책에 우르르르 집어넣고 덮으면 끝이에요. 그렇게 넣어놓고 잊고 있다가 작업할 때 꺼내는 거죠. 작업할 당시에 제가 갖고 있는 생각과 주제에 부합하는 꽃을 만나면 그림이 되는 거고, 그냥 지나치는 꽃들은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하면서 그냥 둬요. 꽃 한 송이도 한 장 한 장 떼어내면 그 모습이 다 달라요. 그 안에 줄넘기를 하는 소녀도 있고, 뒤돌아선 할머니도 있고, 인디언도 있어요. 옛날에 엄마들이 자식들을 보면서 한 배에서 나왔는데 어떻게 저렇게 다르냐는 표현을 쓰잖아요. 제 마음이 딱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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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강강술래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37명의 강강술래 하는 사람들이 99명으로 늘어났고, 얼마 전에는 5m 높이의 벽을 채워 넣었어요. 이전의 작업들을 보면 꽃이 작다보니 거기에 맞춰서 사이즈가 작은 편이었는데 강강술래를 시작한 이후로 강강술래가 한없이 확장되는 것처럼 제 그림도 한없이 확장되고 있는 거 같아요. 강강술래를 접하면 접할수록 신비롭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에너지가 손과 손을 거쳐 저쪽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전달이 돼요. 서로의 손을 잡고 원을 만드는 그 순간에는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직업도, 성격도 그 어떤 것도 상관이 없어요. 모두가 하나가 되죠.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고 연구해볼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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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2.3, 마른꽃과 펜 드로잉, 2015

진정으로
꽃이 사람이 되는 게 재미있어서 그림을 계속 그렸던 건데 기술적으로 능숙해지니까 그 감흥이 사라지더라구요. 그래서 한동안 아예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적도 있었어요. 지금도 기술에 의존하면 작품이 기계적으로 술술술 나와요. 그래서 그러지 않으려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려요.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앞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하죠. 진정으로 정성을 담아서 그리려고 해요. “이 정도면 됐어”가 되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걸 한 단어로 얘기하면 ‘진정성’이랄까요. 진정성이 담길 때 제 그림을 보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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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s, 마른꽃과 펜 드로잉, 2014  

다르게 보기
뭔가를 볼 때 겉만 보는 게 아니라 속까지 깊게 보려고 해요.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사건이나 일들 역시도요. 꽃을 다르게 보고 꽃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능해진 일이 아닌가 싶어요. 이런 성향은 아이를 키울 때 제일 잘 발휘되는 거 같아요. 음식을 먹다가 옷에 흘리잖아요. 그러면 저도 모르게 아이와 남편을 불러요. “이거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사람 같지 않아?” 그러면 남편은 사람 얼굴 같다고 하고, 아이는 또 다른 걸 얘기해요. 그런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확장되고 관계 그리고 생각도 확장되는 거 같아요. 

사람 그리고 삶
꽃으로 사람을 계속 그리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인 거 같아요. 사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 내면까지 말이죠. 그리고 그 그림 속에서 사람들이 위로 혹은 소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68 April, 2016 스페셜 이슈] Plants are Evrywhere Part2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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