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 최준석(N.A.A.U 대표, <어떤 건축> 저자) 포토 > 천윤기
Do You Know 63Building?
63빌딩을 아십니까?
원형으로 불리는
1976년 버전의 영화 <킹콩>에서 킹콩은 지금은 무너진 쌍둥이빌딩을 오른다. 맨하튼의 수많은 빌딩 중 왜 하필 저길 오를까 싶었다. 1933년 원작에선 쌍둥이빌딩이 아니라 탑처럼 뾰족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올랐다. 최근 리메이크된 2005년 버전에서 킹콩이 올라간 빌딩은 다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다. 얼마 전 1976년 버전을 우연히 다시 봤는데 거기서 궁금증이 풀렸다. 킹콩이 살던 섬에 쌍둥이빌딩과 비슷한 절벽이 있었고, 킹콩은 쌍둥이빌딩을 보며 잊었던 고향의 원형을 발견한다. ‘어차피 고향 가긴 틀렸으니 올라가보자. 올라가면 혹시 고향에 갈수 있지 않을까.’ 자석에라도 끌리 듯 킹콩은 무작정 오른다. 그리고 죽는다.
사람(킹콩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을까)의 생활에서 무의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95% 이상이다. 나머지라고 해봤자 고작 5% 정도인데, 말하자면 사람은 대부분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판단하고 활동한다는 얘기다. 무의식에 대해선 이미 카를 융(Carl Gustav Jung)이라는 위대한 천재가 자세하게 설명을 해놓았다. 그의 말을 잠깐 살펴보면 이렇다. “무의식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기억이라는 것.” 경험하지 못한 기억이라, 경험도 못한 기억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나. 융은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을 해준다. 무의식은 우리의 부모, 그들의 부모, 또 그들의 부모의, 부모의, 부모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융은 무의식이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뿌리로부터 내려온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결국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물려받은 유전자 같은 것이다. 융은 이것의 정체를 ‘원형(Archetype)’이라 정의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 모든 취향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감각. 의식적으로 논리와 감성을 동원해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원형은 정해진 형태가 없는 무의식의 영역이다. 예술가들은 오래 전부터 이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조각이나 건축을 통해,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구의 무의식에나 있는 그 공감의 덩어리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건축은 크기가 컸다.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래서 원형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건축물은 하나의 도시, 나아가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기념비로 칭송받았다. 건축가와 권력자는 늘 이 문제를 고민했다. 스톤헨지의 시절부터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바빌로니아의 탑들은 실질적 출발점이다. 이후 고딕을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런 고민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건축을 왜 하는가, 건축으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원형으로서의 건축물은 에펠탑이다. 에펠탑은 1889년에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졌다.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지지부진하던 그 시절 파리의 위상을 한 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으로 아주 거대한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에펠탑은 본적이 없는 특별한 이미지였고 그래서 거슬린다는 비난도 많았다. 하지만 세월을 먹으면서 점점 확고한 존재감을 증명하고 있다.
어떤 도시든 원형으로 불릴만한 건축물을 갖고 싶어 한다. 그것은 모두가 호감을 느끼는 보편적인 아름다움과 개성을 지닌 건축물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일차적으로 크기나 높이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남는 원형의 건축물들은 그것만으로 인정받지 않았다. 우리의 서울도 그런 원형 비슷한 뭔가가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아시안게임(1986)과 서울올림픽(1988)의 흥분으로 가득했던 시대였다. 그때는 참 보여줄게 없기도 했다.
서울의 원형이 필요해, 63빌딩
도시들이 그들이 원래 갖고 있던 전통적 색채를 버리고 너도 나도 국제화라는 평균적 경관으로 통일되면서 더더욱 특징을 보여줄게 마땅치 않게 되었다. 단순하게 보면 높이 하나의 문제다. 도시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어떤 것, 그것이 건축이라면 아주 거대하거나 아주 높거나 해서 눈에 띄어야 할 것이다. 초고층 빌딩의 건립 계획은 대개 그런 목적에서 출발한다. 목적이 일단 랜드 마크 일변도로 흐르게 되면 건립의 의미나 스타일, 시대정신 같은 복잡한 개념은 필요 없게 된다. 가장 높으면 그걸로 이야기는 끝난다. 63빌딩은 1985년 7월 개관 당시 아시아 최고 높이였다. 63빌딩이 처음 계획된 것은 1979년 2월이었다. 1979년 8월엔 건축 설계가 진행되었고, 그해 10월엔 원래 이 계획을 추진했던 정권이 허무하게 쓰러졌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었다. 바뀐 시대는 이 계획을 이양했고 결국 완성시켰다.
63빌딩은 올망졸망한 건물들이 빼곡한 여의도에 홀로 우뚝 솟은 압도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산이 많은 서울의 지형에서 유난히 시야가 트인 장소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물 위에 띄워진 납작한 배 위에 올라타듯 63빌딩의 수직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 최고 높이의 빌딩을 목표를 세우면서 여의도를 장소로 삼은 것은 어쩔 수 없는 풍경의 극대화 전략이 아니었을까.
한편으로는 서울이라는 장소가 지니고 있을 무의식의 원형을 만들고 싶었던 역사적 정서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서울이라는 장소가 수백년을 지내오면서 한 번도 갖지 못했던 어떤 과시적 모뉴멘털(Monumental)에 대한 동경이다. 서울의 콤플렉스는 근대로 넘어오면서 식민지와 전쟁을 겪고 더욱 심해졌다. 이것을 극복하는 집착증적 욕망이 건축물로 발현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마천루를 보며 느낀 선진국에 대한 사무친 동경. 우리에게 내재된 고풍스럽고 단아한 풍경을 오랜 시간 조성하기보다 높이를 통해 한 번에 올라서는 방식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만이 가장 쉽고 빠르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이라 여겼다.
63빌딩의 높이는 해발 264m. 해발 265m인 남산보다 1m가 낮다. 구조적으로는 철골을 완전 일체식으로 시공하여 지진 시 건물이 전체적으로 유연성을 확보하여 스스로 버텨내도록 설계되었다. 최대 좌우 60cm의 허용 탄력을 확보했다. 또한 건물은 10만 톤에 이르는 엄청난 자중과 지하 40m 이하 암반에 박혀있는 최대 직경 4.5m의 대형 피어 243개를 통해 연약한 강변 토양을 극복하며 지지되었다. 잘 빠진 유선형의 바디는 모양을 내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안전을 위한 구조적 시스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단순히 멋있게 보이기 위한 형태가 아니라 구조를 감안한 자연스러운 형태라는 얘기다.
완공 후 63빌딩은 김포공항으로부터 올림픽대로를 통해 서울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마치 장승처럼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보러온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것의 실제적 위용이 손님들에게 우리가 기대했던 기분을 느끼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큰 국제 행사의 호스트로서 스스로의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위신은 세워주었다. 어쨌든 아시아 최고 높이였으니까.
2012년, 63빌딩도 어느덧 27년이 지난 중견이 되었다. 그 세월동안 여의도와 한강의 풍경을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매개체로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왔다. 서울에서 가장 평평하고 수평성이 강조된 장소를 골라 가장 높은 수직을 세웠던 당시의 판단은 탁월했다. 특히 이 63빌딩의 수직은 독특하고 아름답다. 그냥 평범하게 위로만 죽 올라간 ‘뻔데’ 없는 모습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위로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바람에 과한 높이로 느껴지지 않는다. 찌를 듯한 높이 일변도가 아닌 수평과 주변을 함께 어울리게 하는 ‘중용의 수직’이었다. 그러면서도 국제적인 보편타당한 아름다움이 충분한 디자인이었다.
건축은 어쩔 수 없이 행위가 시작되는 순간 수직성을 표현하게 된다. 도시의 건축물은 특히 그렇다. 중력에 반하는 가장 저돌적인 작업이 건축이다. 이에 대한 용감한 도전을 힘의 상징으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약탈해 자신들의 도시로 가져왔던 고대 로마의 권력자들이나 신의 권위에 다가서려 했던 고딕시대의 성직자들, 그리고 파리를 위해 에펠탑을 용인했던 당대의 시민들은 모두 이에 동의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2012년의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직을 동경했다. 거품 같은 위엄을 위해 100층이 넘는 마천루를 지금도 지어 올린다. 현대적 도시 서울의 원형이라 부를만한 건축을 생각해본다. 63빌딩은 어떨까. 높이로만 이야기되던 63빌딩은 높이로만 끝낼 건축물이 아니었다. 이 집은 오히려 세월을 먹어가면서 서울의 우리에게 진정한 원형의 공감을 느끼게 한다. 그때의 입장에선 시대를 앞서갔고, 이제 돌이켜보면 몰랐던 아름다움과 친밀감이 보인다. 어쨌든 시대는 확실히 바뀌었다. 도시는 급변하며 이리저리 눈을 돌리는데 여전히 건축은 한발이 늦다. 가끔은 뒤에 남는 게 진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