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Sull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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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Sully, 2016)>

비좁은 땅이지만 작은 마당 하나를 두고 싶어서 고민하고 있다. 스케치를 하다가 찢어버리고 다시 그리기를 여러 번, 아무리해도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오질 않는다. 고작 열 평도 안되는 마당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비좁은 땅일수록 집 내부와 연결된 작은 외부공간의 분위기는 그 어떤 요소보다 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 터라 계속 그려보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공간의 분위기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이성 보다는 감성, 논리보다는 직관을 믿어야 하는 과정, 가로 세로 얼마에 몇 평짜리라고 얘기해봤자 그 안에 담고 싶은 진심과는 별 상관이 없다. 

말을 바꿔 바닥엔 나무를 깔고 얕은 담을 둘러 아늑하게 만들고 싶다고, 좀 더 풀어서 얘기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선 그게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이런 고민의 지점을 그나마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인간적’이라는 형용사다. 그래서 이 공간에 인간적인 뭔가를 담아내고 싶다고 말한다. 바람과 볕, 나무, 계절감, 앞으로 이 집에서 벌어질 다양한 생활 풍경이 자연스레 담길 수 있는…. 그래서 사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인간적인 공간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 

모형을 통해서도, 공들인 3D그래픽을 통해서도 정확히 뭔지 잘 전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요소를 통해 좀 더 행복하고 정감 있는 집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상황은 녹록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효율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돈 싸움을 벌이는 게 숙명인 건축에서 ‘인간’에 대한 진심은 자주 한가한 이야기로 들리곤 한다.  ‘그냥 볕 잘 들고 관리 편한 마당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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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Sully, 2016)>

2009년 1월 15일, 탑승객 155명을 태운 US 에어웨이 여객기는 라과디아 공항 활주로를 이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등장한 새떼와 충돌 후 두 개의 엔진을 잃는다. 기장 체슬리 설렌버거(설리)는 지상 850미터 상공에서 표류하는 여객기를 라과디아 공항으로 몰고 갈 것인지, 허드슨강에 비상착수를 할 것인지 순간적으로 결정해야 할 상황에 몰린다.   

기장 설리는 허드슨 강으로 비상착수를 시도한다. 공항까지 회황하기 힘들다는 판단 후 수면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08초, 이어진 신속한 뉴욕경찰과 구조대원들의 대응은 골든타임 24분 만에 승객전원을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허술한 구조시스템으로 주기적으로 참사가 일어나는 우리 현실에 비춰보면 부럽기도 하고 ‘기적’(우리말 제목에 쓰인)으로 불릴만하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영웅담으로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급박한 순간에 정확한 결정을 한 설리가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에서 집요한 피드백을 받으며 고뇌하는 장면에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할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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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Sully, 2016)>

사고 후 기계적인 시뮬레이션 결과를 두고 과연 강에 착륙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냐고 추궁하는 위원회의 시각은 승객 155명 모두 무사하다는 결과 하나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추운 겨울날 물에 빠진 여객기의 승객이 잠시나마 큰 위험에 빠져있었다는 분명한 팩트를 잠재적 착오로 간주하고 질문을 이어나간다. 더 좋은 선택이 있었는데 기장의 판단 착오로 자칫하면 큰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는 것. 사후 검증은 좀체 쉽게 끝나지 않고 설리를 괴롭힌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영화 설리(Sully)는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프로페셔널 한명이 어떤 기준으로 중요한 순간에 선택을 내리는가, 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다. 시뮬레이션이란 기본적으로 팩트를 기반으로 최대한 합리적 조건 하에 만들어진다. 하지만 설리가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시뮬레이션엔 종종 ‘인간적 요소’가 제외된다. 인간적 요소란 하나의 사안을 보편적 시각에서 해결하기 위한 기준으로 삼기엔 너무 주관적 관점일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건축에서도 인간적 요소는 늘 합리적 기준으로 작성된 시뮬레이션 결과와 충돌한다. 

작은 집 하나를 짓더라도 일단 기능을 충족시켜야 하고 그것이 안전하게 땅위에 설 수 있는 것이 기본이다. 각종 배관과 배선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그 결과 비용은 경제적으로 계획되는 것이 보편적인 시뮬레이션 상에서 좋은 건축이다. 하지만 좋은 건축은 그런 식의 정량화된 조건만으로 만들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사람의 감정과 느낌을 중시하는 건축가의 직관이 풍부한 공간에서 우리는 편안함과 감동, 행복을 느낀다. 이를테면 따뜻한 빛이 들어오는 소담스러운 거실, 거실과 이어지면서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작은 마당, 집안 밖의 소란스러움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은신처 같은 서재, 욕조에 몸을 담군 채 주변 시선 신경 안 쓰고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작은 창,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옥상 테라스 같은 것들이다. 

이런 인간적 요소들은 사실 도면에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최종 결과가 드러나기 전에는 일반인들은 잘 가늠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설계를 하는 건축가나 공사를 하는 시공자는 이런 식의 ‘인간적 요소’를 토대로 한 개별적인 시뮬레이션을 집 짓는 내내 고민하게 된다. 물론 언제나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식의 시뮬레이션으로 도출된 합리적(?) 반론과 충돌하긴 하지만.    

영화는 우리 주변의 건축과 도시에서 결여된 인간적 요소들이 우리 사회의 사고방식과 가치기준을 어떻게 변질시키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책임을 피해 피선 명령 없이 혼자 탈출한 여객선의 선장이나 물대포로 사람을 죽게 한 후 정확한 사인을 위해 부검을 하자는 정부의 태도는 결국 이해관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정작 중요한 ‘인간’이라는 가치를 부정한데서 비롯된 결과다. 효율과 기능만을 따지며 지어진 건축과 도시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다. 효율과 기능만을 따지며 계획된 마당, 거실, 식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계처럼 완벽한 계산으로 시뮬레이션된 결과는 아니더라도, 인간을 위한 좋은 결과는 어디든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