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ent of A Flower

DALLBOUN

 

친숙한 단어 ‘실’과 ‘그림’이 만나 낯선 ‘실그림’이 되었다. 달분은 실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한복이나 생활 소품의 어딘가를 장식하던 자수와는 분명 다르게 그녀는 내면 깊숙한 이야기를 꺼내 간결한 선과 강한 색깔로 한 땀 한 땀 새겨놓는다. 그녀의 그림 속에선 꽃이 얼굴을 대신하고, 밥을 대신하고, 부처를 대신한다.
꽃 뒤로 표정을 숨긴 탓인지 그림에선 고요한 정적과 여백미가 느껴진다. 달분은 남들이 촌스럽다고 말하는 옛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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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업고 가는 사람(길), 65x85cm, 천·실, 2010

 

꽃을 그린 작품이 많아요. 이유가 있나요?
저는 어린 시절을 가족들과 떨어져 지냈어요. 그리움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죠. 외톨이였던 저는 아이들이 집에 돌아간 빈 교실에 남아 학교 화단에 있는 꽃을 그렸어요. 꽃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행복했어요. 특히 주먹만 한 노란 수국을 좋아해서 많이 그렸는데 결핍을 넘어서려는 출구로 꽃을 바라봤던 거 같아요. 그 때문인지 지금도 행복을 표현할 때는 노란색을 쓰게 돼요. 첫사랑을 거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꽃은 언제나 제게 그런 역할이에요. 아직 매끄러운 정의를 내릴 순 없지만 계속 찾아가는 중이에요.

 

‘꽃부처’도 그렇고 ‘꽃여자’도 그렇고 의인화된 꽃들이 참 재미있어요. 얼굴과 표정 대신 꽃을 보여주는 이유가 궁금해요.
제 자신이 꽃 뒤에 숨은 거죠. 꽃은 관념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제가 저라고 말하는 그것 또한 관념인 셈이죠. ‘나’라고 말하는 실체란 무엇인가, 그것 또한 관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관념이라고 할 정도로 관념은 절대적이고도 거대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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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손, 46x57cm, 모시·실, 2010

 

작품에서 불교적인 요소가 많이 엿보여요. 불교적인 요소를 모티브로 사용하는 이유나 담고자하는 의미가 있으신가요?
불교를 모티브로 삼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종종 받을 때마다 되려 제가 제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해요. ‘아마 내가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나 보다’ 하고 웃어넘기는데, 제 무의식 어딘가에 있던 것들이 표현된 것이 아닐까합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에 관심이 많아요. 불교 자체가 철학적인 물음으로 늘 작용을 합니다. 단순한 호기심이건, 답답함에서 오는 질문들이건 불교에서 많은 해답을 얻고 있어요. 물론 얻어도 얻어지는 게 아닐 때가 많죠. (웃음)

 

비단, 견사, 모시, 천 질감이 각기 달라요. 그래서인지 작품의 배경으로 쓰인 천에 따라 분위기도 다르게 느껴져요.
배경천을 선택 하는 것은 처음 의도한 작품의 내용에서 나와요. 예를 들면 모계의 여성성을 담고자 하면 자연스레 배경천은 대지를 닮은 흙색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제가 선택한다기보다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때그때 작품에 따라 염색을 한다거나 물감으로 효과를 내기도 해요.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자수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실그림의 매력은 뭔가요?

자수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자수를 배워본 적도 없고 해본 적도 없어요. 자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수 자체가 가지고 있는 형식, 유형, 이런 것들이 저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자수는 예쁘고 고운 느낌은 있지만 저는 언제나 그 이상에 목말라요. 그래서 제 작업에 ‘실그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제 맘대로 내키는 대로 작업을 시작했죠. 이름을 만들고 불러주니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그림을 그리다보면 실이 갖는 특성과 한계를 넘는 것에서 즐거움이 생깁니다. 물감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분명히 부딪치는 한계도 있지만 그것 역시 제겐 큰 매력으로 다가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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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속에서 오줌을 누는 여자, 68x88cm, 천·실, 2012

 

작품을 만드시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신체적인 어려움으론 아무래도 한 자세로 장시간 있기 때문에 담이나 어깨 결림, 두통이 자주 오는 것이구요. 처음 작업을 시작 할 때 의도한 것들과는 다르게 중간쯤 가면 이탈 하고픈 충동이 항상 일어요. 그런 변수는 큰 틀을 지키는 선에서 즐기는 편이지만 머리와 손, 가슴의 조화로움에 대한 집중과 고민이 제일 힘듭니다.

 

실그림 외에도 ‘온고지신’이라는 오래된 한복, 이불 홑보 등을 이용한 업사이클링 가방을 선보이고 계시더라구요.
워낙에 오래된 것들을 좋아해요. 개인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인 옛 천에서 영감을 받고 즐거움을 느껴요. 빠른 현대 사회에서는 오래된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애틋함을 가지고 있어요. 예전 우리 어머니들은 모두 생활 예술가들이셨죠. 짓고 만들고 나누어 입었던 것들은 가족의 일원이 되어 삶과 함께 갔구요. 대량으로 생산되는 자본의 물결로 인해 그런 아름다운 것들이 고루하고, 촌스럽다는 이유로 쉽게 버려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가방을 만들게 됐어요. 말하자면 저는 옛 것과 지금의 것을 이어주는 중간 유통업자인 셈이에요.

 

달분이라는 이름이 참 따뜻하고 친근해요. 어떤 의미인가요?
촌스러워서 좋았습니다. 촌스러운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종종 발견합니다. 그리고 제 이름을 제가 지어서 불러보고 싶었어요. 달분은 몇 년 전 시를 쓰다가 “자고 일어나면 나의 창 밑에 소복이 달가루가 쌓여”라는 대목에서 따왔어요. 달과 가루를 뜻하는 분을 써서 달분. 워낙에 야행성이다보니 해보다 달을 볼 때가 더 많아요.

 

2012년의 마지막 크리에이티브 스피릿 위너이자, 2013년의 첫 위너 인터뷰예요. 작년엔 어떤 한 해를 보내셨고, 올해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작년엔 두 번의 그룹전을 가졌어요. 작품을 하는 것보다 생활 때문에 가방을 만드는데 시간 할당을 많이 했습니다. 가방 작업은 이제 접고 작품 활동에 열중할 생각이에요. 올해 말쯤 개인전도 준비하고 있구요. 5월에는 ‘홍콩아트페어’에 참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