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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 없이 그리는 그림>


이름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겠네요? 미국에서는 그래피티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하는데, 자기 맘대로 그림을 그려놓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반달스(Vandals)’라고 불러. ‘반달’이라는 한국발음도 뜻이 있는 단어가 되기도 하니까 내 이름을 ‘Vandal’로 지었지. 괜히 다른 사람이 태깅한 자리 옆에 내 이름을 슬쩍 써놓고 혼자서 보기도 하고. (웃음) 혼자 스프레이를 가지고 노는데 시간을 쓰다 보니까 어느새 예전엔 컨트롤이 안 돼서 힘들었던 부분들이 점점 컨트롤이 되기 시작하는 거야.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릴 수 있게 되니까 점점 재미가 생기고, 나중엔 점점 더 과감해져서 그림도 크게 그리고. 계속 그걸 반복했지.

 

‘무리’가 생기기 시작했겠네요? 처음엔 함께 군 생활을 했던 고참이랑 둘이 죽이 맞아서 같이 그림을 그리러 다녔어. 그러다 우리 이제 그림 그리고 도망 다니지 말자, 해서 아지트를 만들기로 했지. 서울역 앞 재개발 하는 지역들이나 남영동 근처 재개발 지역을 쑤시고 다니면서 빈집들에 그림을 많이 그렸어. 그러다 남영동에 옥탑 방을 하나 얻었어. 주인 할머니한테 얘기해서 옥상 담벼락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조건으로.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최초의 공간이었지. 거기서 그림을 그리고, 그걸 찍은 사진을 PC 통신 동호회에 올렸는데, 반응이 대단한 거야. 그래피티에 관심 있는 친구들에게 점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모도 하고. 나중엔 혼자 하고, 둘이 하는 단계를 넘어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서도 그래피티가 자생적인 하나의 씬으로 만들어졌지. 그때가 1990년대 말쯤이었어.

 

당시 형이 생각하는 그래피티에 대한 개념은 어땠어요? 그래피티가 한국에 유입된 단계를 보면, 나처럼 자연스럽게 그림의 표현방법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었고, 미술 히스토리 안에서 바스키아(Basquiat)나 키스 해링(Keith Haring)처럼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어. 물론, 힙합의 한 요소로서 접근하는 사람들도 많았지.

 

힙합과 관련된 요소로 본 그래피티는 정치적 풍자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참 중요한 질문인 거 같아. 힙합에 관련된 사람들과의 인터뷰에서 항상 받는 질문이 “힙합은 저항정신 아니냐”는 건데,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의아한 게 하나 있어. 1980년대 초반 미국 힙합 씬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드라마를 보면, 그게 되게 즐거운 문화였거든. 힙합은 즐거움 자체가 큰 원동력이야. 돈 없는 사람들이 갖고 놀게 없는 상황에서 아주 완벽한 놀이문화를 만들어 낸 거거든. 시가 있지, 비트가 있지, 춤도 있지, 그림도 있지. 근데 이걸 백인이나 엘리트주의적 관점에서 보게 되면 말이 달라지는 거야. 이 문화가 확산되면서 문화로서 뭔가를 결집시키는 구심점으로 커지는 느낌이 들면 그들 눈에는 ‘저항’으로 보이게 되는 거야. 이런 관계 설정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처음에 즐거움과 재미로 시작했던 문화도 응집을 위해 채도를 높이게 되니까 이제는 완전 ‘저항정신’이 되어버리는 거지. 나름의 명분을 쌓아 결집을 시키면서 ‘이런 이런 의식으로 한 거야’ 하는 과장된 면도 생겨나고. 사실 나도 내 과정으로 보면, 내 자신의 즐거움이 컸던 거지 뭔가 표현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이걸 가지고 10년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 하는 계산마저도 없을 만큼 나는 이게 너무 좋고, 즐겁고, 다른 사람보다 멋지고 세련된 표현 방식을 발견하면 ‘이런 게 되는 거구나’ 하는 자부심도 느끼고. 그저 나에겐 놀이를 잘 하는 순수한 느낌의 동기뿐이었던 거지.

 

# <반달리즘: 예술 문화의 고의적인 파괴>


반달만의 스타일이 있을까요? 나는 내 그림을 통해 일관성 있는 스타일을 추구한다기보다 변하고 있는 그때그때의 나를 표현해. 나에게 가장 중요한 동기는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순수한 즐거움이야. 변하고 있는 내 자신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나의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겠지. 결과물의 일관성이 있고 없음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그때의 그 그림을 그리는 나 자신의 상태가 가장 중요한 거지.

 

뭔가 형만의 강한 느낌이 있어요. 사람들이 봤을 땐 강한 느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땐 아닌데? 난 더 강해져야 하는데? (웃음) 하긴, 기독교 신자이신 우리 어머님이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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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느낌들이 어디서 나와요? 모순적인 내면의 갈등에서 나오는 것 같애. 어렸을 땐 항상 한쪽 면만을 갖추는 걸 강요받으면서 살았어. 말쑥한 차림과 바른 행동. 어디어디에선 이러이러해야한다. 무의식적으로 나 스스로에게 강요한 것도 있지만, 집안 분위기에 의해 강요받은 것도 있어. 하지만 나는 ‘반대편도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던 거지. 내 원칙을 가지되 다른 이에게 강요하지 않는 걸 원했어. 착하든 안착하든 그 관념은 타인에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거든. <데미안>의 주인공을 보면서 꼭 나 같다고 생각했어.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면서 ‘나쁜 거야’, ‘안 좋은 거야’라고 알고 있는 세상과 동떨어져 살다가 사춘기가 되어서야 그쪽 세계의 맛을 보면서 시작된 갈등. 그런 상황에서 철학적인 균형을 갖고, 음양의 기운이 조화되는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 세상엔 ‘음’이 있어야지, ‘양’만으로는 살 수 없잖아. 극적인 예를 들자면 이런 거지. 악함이 없는, 즐거움과 행복만 가득한 천국을 나에게 준다고 해도 나는 절대 거기에 살고 싶지 않아. 맞으면 아프기도 하고, 같이 부딪히고 깨지고, 주변에 나쁜 놈들도 적당히 섞여있는 세상이 더 좋아 나는. 내가 그래피티에 훅 빠질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그거야. 내가 이전까지 생각해왔던 미술의 개념은 갤러리에서 팔짱 끼고 보는 것에 가까웠는데, 그걸 단 한방에 날려버리는 반대편이 있다는 걸 보여준 게 바로 그래피티야. 누가 내 그림을 예술이라고 인정 안 해줘도 괜찮은 거지.

 

말 그대로 ‘반달리즘’이네요. 그렇지. (웃음) 1999년이었어. 동생들이랑 술을 마시다 무작정 기차를 타고 내려가 새마을호에 그림을 그렸어. 그래피티 하는 사람들 최고의 로망은 기차에 그림 그리기거든. (웃음) 그러고 나서 2달쯤 후에 경찰에 걸렸다는 연락을 받고 부산으로 내려갔지. 당시 5명에게 청구된 벌금이 700만원 정도였어. ‘반달’이라는 단어 뜻이 공공기물 훼손인데, 내가 그걸로 처단을 당한 거지. 없던 살림에 내가 벌금 때문에… 어휴…. (웃음)

 

결국 로망은 이룬 거네요. (웃음) 초기 뉴욕 씬에서 그림 좀 그린다는 애들은 모두 기차에 그림을 그렸어. 기차가 교차되어 지나가는 ‘코너’에 서 있으면, 저 동네 그림 그리는 애가 기차에 그린 그림이 내 앞을 싹 지나가는 거지. 내가 기차에 그린 그림도 저쪽 동네를 향해 가고. 웬만한 갤러리에 그림이 전시된 것보다 더한 짜릿함과 자부심이 있어. 불법이라는 것과 규제된 행동을 하면서 금단을 넘어서는 짜릿함과 스릴도 있지. 가지 말라는 곳을 굳이 가는 느낌, 내가 이태원을 사랑하는 바로 그 이유.

 

‘압구정 굴다리’에 처음 그래피티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형이었잖아요? (웃음) 당시 그래피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그걸로 나를 알게 된 사람을 통해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맞은편 지하 보드샵에 내 공간을 얻게 됐어. 작업실 벽은 그림 한번 그리니까 끝나잖아. 그래서 밖에 나가 갤러리아 백화점 사이 ‘압구정 굴다리’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지금은 그곳이 그림으로 가득하지만, 그땐 그림 하나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무도 없을 때 제일 처음 혼자 가서 그림도 그리고, 그러다 거기서 사람들도 만나고. 그림은 점점 늘어나고 주민들 민원이 들어오면 한번 싸악 지워졌다가, 잠잠해질 때쯤 되면 다시 그림으로 채우고. 그게 계속 반복됐지.

 

# <세상에 필요한 약간의 상처>


그래피티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시도는 언제부터 시작된 거예요? 1990년대 말부터 한국의 인디 컬쳐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잖아. 벤처투자와 연관이 되면서 그래피티 교육이나 캐릭터 라이센스 같은 사업을 통해 수익이 생기기 시작했지. 그때 그래피티 수업을 수강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돌려보내야 할 정도였어.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중고생들부터 시작해서 40대 후반의 현직 미술교사까지 다양했어. 지금 그래피티 씬에서 나름 자기 이름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거기서 많이 나왔지. 그림을 몇 년 동안 꾸준히 해온 애들도 그래피티를 배우겠다고 왔었어. 아니, 이렇게 재미있어할 거면서, 왜 이 아이들은 이걸 진작에 시작하지 않았지? 깜짝 놀랐지. 실제로 자기가 좋아하는 뭔가에 대해 솔직하게 반응하고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의외로 2~3년 동안 관심만 있었지 시작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이런 기회를 안 만들어주면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다가 마는 거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Vandal’s Art Factory(VAF, 바프)’를 만들었군요. 자연스럽게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앨범 재킷이나 공연 무대 연출, 영화 아트디렉팅 같은 일들이 많아졌어. 동생들도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런 의지로 VAF를 만들어서 철저히 공산주의 시스템으로 유지했지. 그러다 돈 관리를 하던 형이 사고를 치고, 조직은 흩어지고, 나는 공황상태에 빠졌지. 게다가 폐병으로 몸까지 안 좋아지면서 더 이상 스프레이로 작업하는 게 힘들어졌어.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던 해에 몸과 마음의 고통이 함께 찾아왔어. 그렇게 자연스럽게 디자인 쪽으로 눈을 돌렸고, 중국으로 건너가 7년 동안 스노우보드 웨어 사업에 집중했어.  

 

한국엔 언제 돌아왔어요? 작년 겨울에 들어왔지. 사업 정리하면서 이 생각을 했어. 그동안 그림도 잘 못 그렸는데, 한국 들어가면 그림이나 실컷 그리자 하고. 한국 들어와서 제일 좋은 게 그림 그리고 싶을 땐 언제든 나가서 그릴 수 있다는 거야. 지금 내가 구로구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거든. 그림 그리고 도망가는 애들 입장에서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맘 놓고 그림을 못 그리잖아. 벽의 소유주 입장에서는 그게 국가든 사유지든 완성하지 못할 거면 애초에 왜 벽에 낙서를 하냐, 하는 식이지.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 그래서 외국에서는 보통 ‘합법벽’을 만들어.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는데, 내가 큰 형이니까 그 일을 추진하려는 거야. 합법적으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벽을 열어주는 거지. 서울 구로에 도림천에 엄청나게 긴 벽들이 있거든. 그곳에서 아이들은 맘 놓고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그림과 관련된 문화들을 만들어 볼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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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림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거니까. 그림으로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보다는 그냥 그림 자체를 즐겼으면 해. 솔직히 그런 것보다 딴 생각을 더 많이 하는 아이들도 많은 것 같아서. 전 세계적으로 넓게 보면 지금은 스트리트 아트가 재조명되는 시기거든. 한국에 어떤 갤러리에서는 해외 그래피티 작가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어. 드문 일이지. 그런걸 보면 한국도 스트리트 문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 하지만 그런 거에 쉽게 편승하는 사람들도 많아. 나는 이거에 빠져서 지내온 시간이 1~2년이 아니잖아.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엄청난 시간을 쏟아 부었어. 작은 씨앗에서부터 움직임 하나하나를 내가 직접 다 겪어온 것들, 과거에서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들을 토대로 아이들이 새로운 뭔가를 더해 더욱 풍성하게 만들면 정말 좋은 건데, 반대로 이걸 간단하게 차용해서 쉽게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는 문제들도 많이 보이거든. 어쨌든 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분위기 자체는 되게 좋은 거 같애.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이 지금보다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어. 그래피티로 온 도시를 덮는 거? 내가 생각해도 끔찍해. 나는 그게 싫어. 세상이 획일화 되는 거. 나에게 그래피티는 그저 꽉 막혀있는 세상에 약간의 상처를 내는, 약간의 자극. 혹은 ‘이런 삶도 있어’, ‘이런 것도 있어’ 하는 다양한 느낌 정도로 세상을 환기시켜주는 역할 정도야. 그래피티로 지구를 정복하자는 생각은 아니야.

 

앞으로 형은 어떻게 살고 싶어요? 고흐나 피카소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내가 예술을 통해 세상에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게 대단한 건 아닐 거라 생각해. 단지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건 ‘우리나라에서 아무것도, 아무도 없을 때 그걸 즐기기 시작했던 사람이 나이가 먹어가면서도 계속 작업을 하는구나’ 하는 것. 내가 갖고 있는 일관성과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유지한 채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그림 그리면서, 동생들이랑 혹은 새롭게 출발하는 애들이랑 이야기 나누는, 그런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