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의 노트에는 어떤 것들이 적혀 있을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영화 <엔딩노트>는 말기암 선고를 받은 스나다 도모아키가
꼼꼼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담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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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마치 스나다 도모아키인 것처럼
장례식에 찾아온 손님을 안내하는 사람은 막내딸 마미 스나다.

가족 계획에 의하면 태어날 수 없었지만
잠시의 부주의(?)로 인해 태어나게 된 막내딸이
끝까지 자신의 속을 썩이고 있다며 투정을 늘어놓는 아버지의 말투에서는
오히려 그녀를 향한 깊은 애정이 드러납니다.

말기암의 고통은 영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확연히 보여집니다.
정년퇴직을 할 때는 분명 풍채 좋은 모습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싹 말라가며 인상도 변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죽음을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마지막이라고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불현듯 찾아오는 죽음에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니까요.


물론, 일본 유수의 기업에서 임원으로 정년퇴직을 할 만큼
여유가 있었던 그의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스나다 도모아키라는 사람 자체가
워낙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어서 영화 <엔딩노트>는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례식에 올 사람들의 명단과 개인 계좌 등
유족이 조치를 취해야 할 모든 내용을 파일로 만들어서 저장해두고
심지어 백업까지 해두는 치밀함을 갖춘 사람입니다.

병실에 누운 채 아들에게
장례식을 치루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말하는
그의 위트있는 모습은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더라고요.

그리고 하나 더.
두 손녀딸 앞에서 완벽하게 무장해제되는 표정은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수 있을만큼 사랑하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할아버지를 보기 위해 미국에서 온 두 손녀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얼굴을 보니
제 마음도 '아…!'하는 소리와 함께 철렁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저 역시 죽음 앞에서 이토록 태연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이정도로 살았으면 나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고 나면 하루 종일 나 자신과 주변인들
그리고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엔딩노트>는 요즘처럼 하얀 눈이 내리고
차디 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상영관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설 연휴에 시간 내서 극장을 찾아가보시는 것도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움을 선사해줄 거에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