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ader


DJ Wreckx는 여러 가지로 의미하는 바가 많은 이름이다. 지금 우리 힙합씬의 ‘형’ 세대들 중 상당한 이들이 그와 관계를 맺고 있고, 여전히 다양한 창작 활동으로 힙합씬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힙합 팬들 뿐만이 아니라 힙합의 경계 안에서 음악을 하고, 춤을 추는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 K-Street의 연재를 구상하기 시작했던 시점부터 만나고 싶었던 그를 우리 힙합씬의 리더라고 불러도 좋다. 5월부터 MC 메타(Meta)와 함께 흥미로운 콜라보레이션을 시작한 그를 만난 날, 정말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DJ Wreckx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 파운드 매거진 6월호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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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rt Meets Hiphop


오래 힙합을 해 오셨는데, 힙합을 하기 이전의 삶은 어땠어요?
그림을 좋아했어요.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초등학교 1학년 때 국무총리 상을 받을 정도로. (웃음) 6학년 때, 화가였던 담임선생님 덕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그게 순수 미술 쪽보다는 만화 쪽으로 이어졌어요. 만화를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듣게 됐고, AFKN을 통해 미국의 음악을 접하기에 이르렀죠. 중학교 때부터 이 채널에 나오는 뮤직 비디오를 녹화했고, 그 비디오테이프들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어요. 새벽 2시 30분만 되면 15분 동안 뮤직 비디오를 틀어줬는데, 그걸 녹화한다고 잠자다 말고 매일 2시에 일어나서 녹화 버튼을 눌렀죠. (웃음)

 

어떤 비디오들이 기억에 남아요?
여러 가지 많지만, 비-보이 팀인 LA Breakers가 LA 올림픽 개막 행사에 나왔던 것이 충격적이었어요. 그 외엔 마이클 잭슨이죠 아무래도. 초등학교 때, 한참 문워커 따라하고 그랬거든요. (웃음)

 

주변에 비슷한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전혀 없었어요. ‘왕따’라고 느낄 정도로. (웃음) 마이클 잭슨은 인기가 많아서 그 때 잠깐 유대감을 느낀 것 같긴 해요.

 

춤에도 관심이 굉장하셨네요?
돌이켜보면 굉장히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쿠킹호일로 옷을 만들어서 로봇 춤 같은 걸 추고 그랬었거든요. (웃음) 그러면서도 AKFN를 통한 뮤직 비디오 수집은 계속 되었는데, 그렇게 보고 따라한 것이 자연스럽게 몸의 움직임으로 이어졌어요. 몸에 잘 받았다고 해야 하나? 고등학교 때, 문 나이트에서 열린 대회에 처음 나갔는데, 덜컥 입상을 했어요. 잘한다니 재미있어서 계속 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영향력 있는 위치까지 가게 됐어요. 문 나이트 계보에 사실 힙합씬의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백댄서’라고 부르는 방송국 쪽에서 일하는 댄서들이 많았는데, 그 때엔 그 분들도 다 힙합의 영향을 받은 분들이었죠 오히려. 바비 브라운(Bobby Brown)과 마이클 잭슨이 요즘 댄스 가요처럼 길거리에서 들릴 때였으니까요.

 

그렇게 춤을 열심히 췄는데, 어쩌다 DJ의 길로 들어선 거예요?
댄서들이 급증했는데 그들에게 필요했던 게 음악이었어요. 나야 뭐, 음악과 그림은 여전히 같이 즐기고 있었으니까, 그럼 나는 음악을 공급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골고루 음악을 듣게 해 주고 싶었어요. 춤, 그림에 DJing이 더해진 거죠. 나만의 노하우 하나를 공개한다면, 댄서들을 위해 만든 곡은 직접 춤을 춰봐요 먼저. 춤추기에 적합한지 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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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DJ로 처음 본 게 클럽 마스터플랜이었는데, 그 전까진 뭐하셨어요?
1990년 초부터 가내 수공업으로 믹스테이프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문화의 흐름이 참 재미있는 게, 그 ‘가내 수공업’ 방식이 뉴욕의 DJ들도 써 먹었던 거더라고. (웃음) 믹스테이프 1~3집은 춤추는 애들한테 무료로 나눠줬고, 4집부터 나우누리 음악 게시판에서 팔기 시작했어요. 꽤 많이 팔렸죠. 노점 상인들이 사용하는 테이프복사기 구입을 알아볼 정도로. (웃음) 그러던 중 내가 춤을 가르치던 후배를 통해 재현이 형(MC 메타)을 처음 만났어요. 뭘 하고 있는데 DJ가 없다, 도와줄 수 있겠냐, 그렇게 마스터플랜에 가게 됐어요. 1998년 즈음인 것 같아요. 내가 가기 전까진 김반장(Windy City)의 드럼 비트에 맞춰 프리스타일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마스터플랜에서 뮤직비디오 상영회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내가 뮤직 비디오를 엄청나게 모아놨잖아요. 음악 동호회에서 힙합 음악 감상회를 한다고 해서, 그 중 최신 거를 하나 가지고 갔어요. “태어나서 이 뮤직 비디오를 이렇게 볼 줄 몰랐다”며 감동하는 애들이 많았어요. (웃음)

 

당시 ‘통신 동호회’ 위주의 공연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DJ는 형 말고 또 있었어요?
없었죠. 뭐 다른 데에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힙합 DJ로서 장비를 제대로 갖춘 건 언제였어요?
처음엔 1604 비슷한 믹서를 구해서 돌려놓고 쓰다가, 재지 제프 시리즈를 구하려고 청계천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기도 했어요. 개인이 외국 물건을 수입한다는 건 불가능한 때였거든요. 다행이 비슷한 믹서를 구해서 쓰다가 오리지널 장비를 구했던 건 1997년이었어요. 음악을 하기 위해 참 많은 과정을 겪었죠. 1990년대는 하루 24시간 중에서 6시간을 잠자고, 9시간은 DJing 연습, 나머지 9시간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냈어요.

 

마스터플랜에 들어간 이후, 많은 것들을 하셨잖아요. ‘최가박당’ 같은 DJ 크루는 아직도 기억나요.
그 때 DJ가 나 말고는 재유(DJ JU)랑 민준이(DJ Soulscape) 밖에 없었어요. 주로 MP Hiphop All Stars 같은 공연을 함께 준비했어요. 한국에서 DJ들의 팀플레이는 생각도 못할 때였죠. 우리가 크루로는 처음이었어요. 이 크루를 만든 것은 내 이름 ‘Wreckx’와도 연관이 있어요. ‘Wreck’은 재생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간 걸 뜻해요. 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DJ로 시작했어요. 나이트 클럽의 DJ들은 있었죠. 하지만 이들이 본질을 못 찾고 문화로 시선을 못 돌린다면 망가진 상태라고 본 거예요. 이걸 재생시켜야 하는데, 혼자서는 못하니까 복수로 ‘s’를 붙인 거고, 디자인상의 문제로 ‘x’로 바꾸게 됐어요. DJ명을 이렇게 바꾸고 나서 ‘최가박당’도 시작하게 된 거죠. 

 

형이 다 시작이네요. 선구자고.
아, 여기서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지금 활동하는 DJ들 중에서 자신들의 시작 시점을 나랑 비슷한 시기라고 밝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그럴 수가 없어요. 내가 그 때 DJ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레슨을 하면서 비디오 기록을 남겨 놨는데, 거기에 그들이 있거든요. (웃음)

 

그거 공개해 주세요! (웃음) 사실 K-Street을 기획한 이유에도 그런 게 있어요. ‘형님’들에 대한 존경, 역사를 바로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 같은 거요.
별 것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넌 알잖아~ 너의 시작이 언제였는지.”  

 

이후에 ‘남사당패’ 같은 DJ 크루도 생기고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게 없네요.
그게 안타까워요. 유행이 지나면 애들이 버리더라구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직업과 연관시키면서 발생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좋아하는 걸로 돈을 벌고자 하는 게 당연한 거 같기도 한데, 저랑 아프로킹 같이 하던 BK가 일본에서 살다 왔잖아요. 걔가 하는 말이, 일본의 DJ들은 음악 이외의 다른 일들을 다 한다고 하더라구요. 형이 2000년엔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봤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돈에 매어 놓았다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여전히 같은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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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J Wreckx = The One

홈페이지를 보면 DJ Wreckx에 대해서라기보단 DJ 문화를 알리고자 하는 메뉴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처음부터 그런 의도로 메뉴를 결정했어요?
감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어요. 지금 DJ Wreckx를 모르는 사람은 많아요. 지난 20년을 노력했는데, 그 동안 좌절도 했고 자포자기로 음악을 관둘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성공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은 나를 나타내기 위해서 했던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문화를 알려주기 위한 거였거든요. 그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 뮤지션들 중엔 내 홈페이지가 제일 처음이었을 거예요. 후배들에게 ‘이 사람은 이렇게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시작했죠. 그 기록들을 가지고 책을 만들어서 무료로 배포하고 싶기도 했는데, 중간에 웹 관리자가 도망가 버리는 바람에 무산 됐네요. (웃음)

 

독보적인 위치의 형에게도 위기나 고비가 있었어요?
은퇴를 해야겠다는 순간이 한 번 왔죠. 2006년에 리버스 크루(Rivers Crew)에 합류한 후에 댄서들 사이에서 ‘배틀 때, DJ Wreckx가 리버스 크루 음악은 맞춰준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마음을 다쳤어요. 많은 비-보이들이 문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있어요. 자기 팀의 우승만 생각하면서 힙합이래요. 그건 힙합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야 힙합이지. 그런 상황에서 나에 대한 말이 그렇게 도니까 ‘내가 너무 오래 머무른 게 아닌가’, ‘내가 이 아이들을 받아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바쁘게만 왔나’ 하는 생각도 들고. TIP가 주최하는 비-보이 배틀 행사에서 공로상 같은 걸 받고 나서 소감으로 내 마음을 밝혔어요. 비-보이들에게 음악을 맞춰준 적, 있어요. 나 같은 경우, 16강 이후에 틀 곡과 예선에서 틀 곡이 다른데, 너무 안타까운 비-보이들, 내가 아무리 맞춰줘도 질 게 뻔한 아이들이 올라오면 “무대에 올라온 김에 춤이라도 실컷 추고 내려가라”는 의미로 ‘It's Just Begun’(Jimmy Castor Bunch) 같은 걸 틀어줘요. 그 아이들이 그런 노래에 맞춰 무대에서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적으니까 경험하게끔 해주는 거죠.

 

아, 정말 형님이시네요.
우리 비-보이씬을 계속 봐왔기 때문에 그 변화를 잘 알고 있어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을 틀면 춤추기 힘들다고 하고, 오히려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를 원하던 아이들이 이제 외국 자료 몇 번 봤다고 미국 비디오 가지고 와서 나를 가르치려고 하죠. (웃음) 요즘 비-보이씬에도 DJ들이 많아요. DJ가 음악 트는 걸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시대의 음악을 실제로 들었는지, 아니면 인터넷상에서 싹 걷어 왔는지가 보이거든요. 어떤 DJ가 와서 “형, 요즘 레게가 대세에요~” 이러죠. 속으로 대답해요. ‘너 초등학교 때, 내가 레게 틀고 있었다.’ (웃음) 그런 사람한테는 뭐라고 말을 해도 이해를 못할 거예요.

 

리스펙이 없어서 일어나는 일들인 것 같아요.
그렇지. 자기한테 이득이 되면 리스펙하고, 아무리 잘해도 나한테 이익 될 것이 없으면 인정을 안 해요. 그게 한국 힙합하는 사람들의 성향이에요. 시간이 지나면서 힙합씬이 다양해졌고, 양적으로도 커졌어요. 그런데 발전은 제자리에요. 여전히 홍대 사람들이 소일거리로 삼는 문화 밖에 될 수 없었던 이유에 이런 리스펙의 부족함, 그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못한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비-보이 배틀에 가면 전쟁터 같아요. 말로는 ‘리스펙’하는데 얼굴은 그렇지 않아요. 말로만 문화가 어쩌고 하고, 디스(Diss, Disrespect)에 대해 논하는데, 그럼 미국 가서 살아야지.

 

우리나라만의 힙합이 정착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죠?
그렇죠. 미국 문화를 배척하란 뜻이 아니라, 오리지널리티를 가져가되 한국 정서에 맞게 만들어가는 것도 지금 이 씬에 있는 사람들이 해야 될 일이에요. 비슷한 게 많아져야 도움을 주고 받고,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데, 한국에선 유독 독식이 자리 잡고 있어요.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사람들을 자기가 컨트롤하기 쉽게 하려고 하죠. 유명해진다는 것은 누구 위에 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뒤에서 서포트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많은 사람들이 새겨들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끊임없이 채찍질을 해 왔는지, 좋아서 하다보니까 이 수준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물론 처음에는 좋아서 한 거지만, 원래 꿈이 만화가였기 때문에 DJ가 직업이 될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그만두지 못한 건 스케줄이 안 끝나서? (웃음) 계속 일이 생기더라구요. 나중에 동호회 활동을 하고 아이들의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아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걸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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