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TV화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소음이 가득한 거리를 누비며 소란스러움을 전달하던 TV가
갑자기 소리를 들려주지 않고 화면만 보여주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순간의 정적이 오히려 소리가 들릴 때보다 더
소란스럽고 무질서하며 강렬한 이미지가 전해질 것입니다.

도서 백의 그림자를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이

바로 그것과 같았습니다.

x9788937483059.jpg  

 


하얀 것을 바라보다가 오히려 하얀 것의 그림자를 보았을 때
하얀 것이 더욱 하얗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림자의 어두운 면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니까
견딜 만해서 말이야.
그게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그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맞는 것 같고 말이지.
-p.46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데요..
우리는 그래도 살아갈 만 하다고 생각하면서 견뎌내고 있습니다.

권력의 횡포, 부조리한 대우, 진실의 은폐까지.
세상의 모든 일들을 내 일처럼 받아들이기엔
제 그릇이 아직 작아서 못 본 척 지나가는 일들이 더 많은데요.

그래도 그 속에는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작지만 소중하게 빛나는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의 하루 하루가 이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끔은.
하나를 사면 똑같은 것을 하나 더 준다는 그것을 사고 보면
이득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배려라거나 고려라는 생각은 어째선지 들지 않고요.
그러고 보니.
오무사의 경우엔 조그맣고 값싼 하나일 뿐이지만,
귀한 덤을 받는 듯해서, 나는 좋았어요.
-p.95


하지만 그럴듯하고 번듯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 때문에
세월의 흔적과 손때가 묻어있는 귀한 것들이 천대받는 시대.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모두 버리지는 않을까.
-p.104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내면이 꽉 들어차 있는 게 진짜라는 것.

그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죠.


속에 본래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알맹이랄 게 없어요.
마뜨료슈까 속에 마뜨료슈까가 있고
마뜨료슈까 속에 다시 마뜨료슈까가 있잖아요.
마뜨료슈까 속엔 언제까지나 마뜨료슈까,
실로 반복되고 있을 뿐이지 결국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p.141


어렸을 때는 소박하고 평범한 삶 보다는
화려하고 트렌디하며 무언가 운명적인 것들을 바라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일상적이며 특별할 것 없는 지금의 현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평범하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일상의 소중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