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것의 종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작은 머리에 빛나는 눈, 삼각형의 귀와 4개의 다리, 그리고 기다란 꼬리.

이런 커다란 유사성의 틀 안에서 개별적인 특징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만 보고난 후에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미래는 고양이처럼? 고양이가 왜? 강아지와 달리 예측이 어렵다는 점을 언급한건가?' 등등.


원제는 <The Future>라는 심플한 제목이고,

4년 째 동거 중인 커플이 고양이 입양을 결정한 후 의도하지 않았던 변화와

맞닥뜨리게 되는 과정을 담아냈다는 내용만 간단히 확인한 후 영화를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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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도 넓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작은 아파트에서 4년 째 동거 중인 소피와 제이슨.

그들은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동물병원을 찾아간다.

그러나 입양하기로 한 길고양이 꾹꾹이는 치료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한 달 뒤에나 집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담당 의사의 얘기를 듣게 된다.


그곳에서 어린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제이슨은

아빠가 직접 그려주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아이의 말에

전시되어 있던 소녀의 초상화를 충동 구매하게 된다.

이 사소한 행동이 앞으로 그들의 미래를 완전히 뒤바꾸게 되는 계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고양이를 입양하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지자

소피와 제이슨은 조금 더 자신들의 삶에 충실해보자는데 의견을 같이하게 되어

인터넷을 끊고, 일을 그만두는 등 평상시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을 실천하게 된다.

그리고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 꾹꾹이는

야생고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케이지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사랑으로 충만한 미래를 매 순간 꿈꾼다.


하지만 삶에 새로움을 가져다주던 신선한 도전들은 더이상 활기차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어느새 이질감이라는 옷으로 갈아 입은지 오래였다.

낯선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던 새로운 시도는 애인과의 결별을 가져다주었고,

세상을 초록빛으로 물들일 것만 같았던 도전은 문전박대라는 차가운 현실로 돌아왔다.

결국 소피와 제이슨은 완전한 결별과 마주하는 시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마치 환상동화처럼 시간이 멈추게 된다.

모든 것이 정지한 상태의 도시는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왔고,

순간 <이터널 선샤인>에서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던 이미지가 떠올랐다.

시간이라는 소재를 매력적인 영상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두 영화가 교차되었던 것 같다.


의도치 않게 멈춰버렸던 시간이 다시 원래의 속도를 되찾는 동안 고양이의 입양날짜가 지나가버리고 만다.

뒤늦게 병원을 찾아가보지만 이미 고양이는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지 오래다.

소피와 제이슨을 처음 본 순간부터 길들여지기로 결심했던 꾹꾹이는 긴 기다림 끝에 죽음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공통 분모로 삼아서

제목을 <미래는 고양이처럼>이라고 지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사람들이 꿈꾸는 '미래'가

각자의 개별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서로 너무나도 다르게 펼쳐지지만

결국 성장하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죽음이라는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는

일반론 속에 있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었다.


소피와 제이슨이 만나서 함께 지내며 서로에게 길들여졌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누군가를 만나서 서로 이해하고 익숙해지면서 길들여져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꾹꾹이가 그랬던 것처럼 길들여지길 바라는 기다림일 뿐이다.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함께 지내며 서로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들마저도

예기치 못했던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서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낯선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그렇다고해서 섣불리 비관할 필요는 없다. 길들여지기 위해 기다리는 것도, 길들여져가는 것도

과정만으로 충분히 찬란하게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좋은 결과가 오면 더욱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