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작품이 영화화된 경우에는 대체로 영화를 안보게 된다.

텍스트가 주는 여백이 만들어가는 상상의 나래를

영상이라는 고정된 이미지와 사운드,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인물들이 한계선을 그어버리기 때문이다.


영화 은교는 원작인 박범신 작가의 동명 소설을 아직 읽지 않기도 했지만,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된 섹슈얼리티만을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상실의 기조를 읽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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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이적요의 문하생인 서지우 작가.

이름없는 문하생으로 살아가던 그가 장르소설을 한 편 발표한 후,

인기 작가로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적요 시인의 집안 살림까지 맡았던 그였지만 분주해진 스케줄로 인해

우연히 만난 여고생에게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그렇게 만나게 된 세 사람.


서작가는 자신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의 세계를 가진 선망받는 고귀한 시인이

절대로 범접해서는 안되는 대상으로 은교를 바라보았으며,

노시인 이적요는 스스로 자신이 쌓아 온 삶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너트리고 싶지 않았지만 가질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도 컸다.

그리고 은교 본인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결핍을 충족시키고자 했으나

스스로가 그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잡길 원하고 꿈꾸는 것은 본인의 손아귀를 벗어나

주변에 가까이 있는 그(혹은 그녀)가 취하게 되는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된다.

특히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이적요 시인의 욕망은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다.

깨끗하고 부드러운 색감과 화사한 빛이 끊임없이 은교를 둘러싸며

환상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온 듯한 이미지를 창출해낸다.

(단 한 번, 갈등이 절정에 치달을 때 붉은 색의 옷을 입고 등장하게 된다.)


문학성을 원했던 서지우와 그것을 가졌던 이적요.

은교를 꿈꿀 수 있는 젊음을 그리워했던 이적요와 그것을 가졌던 서지우.

온전한 사랑을 받고자 했던 은교와 (은교가 나타나기 전까지)돈독한 유대관계를 가졌던 서지우와 이적요.

어렵기만했던 서지우와는 달리 너무나도 빨리 이적요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던 은교.


등장인물들은 가질 수 없는 것과 갖고 있는 것이 만들어 낸 복잡한 미로 속에 서 있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상실을 향해 달려가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나면 '은교'라는 이름은 특정 대상을 지칭하던 의미를 더 이상 지니지 않는다.

그것은 은교라는 이름으로 표현된 '보이지 않는 타자에 의한 울타리'로 변화한다.

나의 영원한 처녀 은교는

결국 내가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를 옭아매고 있는 울타리를 떠올려본다.

그 속에서 아등바등대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내가 갈망하는 환상의 대상이 무엇인지

결국 그 환상은 내가 손에 넣지 못했을 때만 순수한 대상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끝나지 않는 질문들을 끝없이 쏟아내며 이토록 검은 밤을 지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