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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한국생활 3년차를 맞이한 이리에 타카히토는 사람들의 얼굴과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드는 아티스트다. 인터뷰를 며칠 앞두고 그에게 일본어 통역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지 물었다. 괜찮단다. 인터뷰 당일, 전자사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 단어를 검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가 말했다. “통역가가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 내가 직접 이야기를 하는 건 느낌이 많이 다르잖아. 커뮤니케이션이 달라지는 거 같애. 뉘앙스도 달라지고.” 그는 근래에 만난 사람들 중 사람과의 소통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자, 에디터가 만난 외국인 중 유일하게 존댓말 느낌의 반말을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지난 4월,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열린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전시 제목이 ‘휴먼 머신(Human Machine)’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기술에 관심이 많았어. 로켓, 로봇 같은 것들. 기술 때문에 인간의 몸과 마음에 차이가 생겼어. 컴퓨터와 핸드폰이 있는 현재와 없는 과거는 많이 달라. 기술이 발전하면서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잖아. 지난주에 조치원으로 이사하면서 오늘까지 인터넷이 안 됐어요. 인터넷이 갑자기 안 되니까 기존의 내 생활과 너무 다른 거야. 기술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싶었어.

 

기술과 인간의 관계라… 나는 앞으로 기술과 역사, 민족, 그리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다 연결이 되어 있어. 늘 생각해. 기술의 발전은 문화와 관계가 있어. 문화의 뒤에는 역사가 있고, 역사의 뒤에는 민족이 있잖아. 계속 공부하고 있어. 정리하는 거 아직은 어려워. (웃음) 기술, 역사, 민족, 문화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가 되면 ‘유토피아’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하고 싶어. 유토피아는 엄청 좋은 나라잖아. 근데 약간의 아이러니가 있어. 어떻게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야. 그 안에 민족문제, 문화문제, 역사문제가 다 들어있어. 

 

유토피아로 가는 과정에서 세분화된 작업이 ‘휴먼 머신’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 맞아 맞아. 유토피아는 엄청 크니까 아직은 힘들어. 사람들한테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일단 그 사이에 있는 기술에 포커스를 뒀어. 기술을 얘기하면 역사, 민족, 문화 얘기가 들어가니까. 눈에 띠게 잘 보여주고 싶었어. 시리즈로 작업하려고 생각 중이어서 처음에 표면적으로 임팩트 있게, 간단하게 내 컨셉을 발표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그리고 이후에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의 작품을 발표하는 거야. 약간 드라마 같애.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 

 

아…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델이 전부 친구들이라고 들었어요. 맞아. 작품에 나오는 모델들은 다 내 친구들이야. 나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 잘 모르는 사람을 모델로 할 수도 있지만 잘 아는 친구들을 모델로 한 건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 저 친구가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색깔이나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싶어서였어. 여기 이 친구는 늘 해피한 친구야.(그는 노트북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보여줬다.) 어두운 색깔과 비비드한 색깔을 섞어서 디자인했는데,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귀엽잖아. (웃음) 이런 식으로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내가 조금 변형해서 표현했어.

 

‘휴먼 머신’ 연작들을 보고, 처음에는 강렬한 색감이 기억에 남았는데 조금 지나니까 인물들의 눈빛이 떠올랐어요. 페이스페인팅을 마치고 사진 촬영을 할 때 친구들한테 특별히 주문한 게 있었어요? 항상 무표정으로 해 달라고 설명해. 페이스페인팅을 하면 이미 다른 사람이에요. 기술의 영향을 받아서 로봇처럼 변한 인간. 순수한 인간도 아니고 로봇도 아닌 중간에 있는.

 

페이스페인팅 작업만 하는 게 아니에요. 캔버스페인팅과 퍼포먼스도 하고, 사진과 영상 작업도 해요. 얼굴에 페인팅을 한 건 모델과 대화하고 싶어서.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해. 페인팅을 할 때는 대화가 없지만 얼굴의 감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어요. 말이 아닌 몸으로 대화하는 게 재미있어서 페이스페인팅을 계속 했어. 페인팅이 주는 느낌, 사진이 주는 느낌, 영상이 주는 느낌, 모두 다 달라. 페인팅, 사진, 영상 모두 프로페셔널한 건 아니지만 아이디어와 컨셉에 맞게 내가 가진 테크닉을 사용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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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지는 얼마나 됐어요? 다 합쳐서 2년 8개월 정도? 2007년에 처음 한국에 왔어요. 도쿄에 있는 타마미술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을 때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처음 보고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어.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좀 더 공부하고 싶어서 홍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어. 교환학생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졸업을 하고 레지던스 작가로 6개월 정도 베이징에 있었어요.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에서 지내면서 재미있었어. 모두 아시아인이고 겉모습도 비슷한데 느낌이 다른 거야.뒤에 있는 배경, 그게 너무 재미있었어.

 

세 나라를 돌면서 앞에서 얘기한 주제들(기술, 역사, 민족, 문화)을 정한 거예요? 그 영향도 있었지만, 사회문제에는 늘 관심이 있었어. 디자인 공부를 한 이유는 테크닉을 공부하기 위해서였어. 이 사회, 이 세계에 있는 문제를 잘 보고 이해해서 작업으로 표현하고 싶었어.

 

일본 민족, 일본의 역사, 일본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만 할 수도 있잖아요. 한국과 중국까지 범위를 넓힌 건 어떤 이유 때문이에요? 일본 민족과 한국 민족, 중국 민족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왜 차이가 생겼을까, 역사와 문화는 어떤 차이가 있고, 차이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그거에 관심이 있어요.

 

그 차이를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차이 때문에 역사도 이렇게 다르고, 역사가 다르면 문화도 다르게 되고, 문화가 다르면 우리가 가진 캐릭터도 다르게 되고, 작은 차이가 큰 차이가 되잖아. 예를 들어서 내가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면 중국 친구는 내 얼굴 옆에서 그 작업을 구경해. 처음에는 너무 깜짝 놀랐어. 한국 친구는 중국 친구보다 조금 더 멀어. 일본 친구는 더 멀어. 1미터 정도. (웃음) 왜 그런 차이가 있는 건지 우리는 모르잖아.

 

재밌다. (웃음) 그런 차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한 말 이해하기 어렵지? 어려워 나도. 그래서 항상 메모해. 내 방 벽에는 항상 화이트보드가 있어. 생각날 때마다 역사, 민족, 문화, 중국, 일본, 서울, 다 메모하면서 정리해. 그래서 유토피아라는 작업은 15년 후나 20년 후, 아니,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웃음)

 

공부를 진짜 많이 해야겠어요. 네. 술도 많이 먹어요. (웃음) 그냥 관심이 있어서 하는 거니까. 항상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어려워. 근데 일단 작업을 하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나는 생각하는 거 좋아해. 음… 그리고 앞으로를 기대할 수 있잖아. 내가 여기서 다 설명할 수 있으면 앞으로 재미없지. (웃음)

 

맞아맞아. 다음에 만나면 또 얘기해줘요. 중국, 일본, 한국에서 작업했으니까 각 나라의 미술시장에 대해서도 잘 알겠어요. 조금. 내 생각을 솔직히 말하면 중국미술은 표면적으로 볼 때 어두워요. 아름다운 거 많이 없고 분위기가 어두워. 그런데 컨셉이 정확하게 있고, 작가와 얘기를 해보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 한국미술은 표면적으로 너무 아름다워요. 잘 만들고 있어. 그런데 작품 뒤에 있는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거 같애. 그냥 아름답게 만드는 거예요. 일본미술은 잘 그리지만 역사적인 문맥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 그게 좀 안타까워서 나는 임팩트 있게, 재밌게 볼 수 있고, 스토리도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

 

앞으로도 한국에서 작업할 생각이에요? 앞으로 2~3년 동안은 한국에서 하고 싶어. 그 이후는 다시 생각해야 돼. 베이징에 갈 수도 있고, 도쿄에 갈 수도 있고. 한국은 중국과 일본 중간에 있는 나라잖아. 중국에서 온 문화, 일본에서 온 문화가 많이 섞여 있어. 그거에도 관심이 있어서 한국에서 작업하고 싶어. 그리고 한국은 내가 처음으로 방문한 다른 나라야. 그래서 편한 것도 있어.

 

고향이 더 편하지 않아? 모르겠어. 심심해. (웃음) 편한 것도 좋지만 고생 많은 게 좋은 거 같애.

 

아직 젊어서 그래. (웃음) 근데 일본에 가면 일본 친구가 많잖아. 외국 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어. 근데 여기에 있으면 한국 친구, 미국 친구, 독일 친구, 캐나다 친구, 다양한 외국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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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세 나라의 차이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도 관심이 있는 거예요? 물론 관심은 있지만 작업으로 하고 싶은 건 아시아야. 만약 내가 유럽에서 작업을 한다면 동양인, 외국인으로 볼 거야. 이리에 타카히토가 아니라 일본인, 동양인으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특별하게 보여지고 싶지 않아. 그리고 아시아, 아시아인, 아시아 문화에 기대하는 것도 있어. 유럽보다 아시아에. 문화가 계속계속 발전하고 있잖아.

 

그런데 타카히토는 왜 아티스트가 됐어요?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잖아.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도 하고 싶고, 도전도 하고 싶고, 많은 사람도 만나고 싶고,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살고 싶어서. 회사에 다니고 있으면 못하잖아. (웃음)

 

젊은 아티스트로서 어려운 점은 없어요? 자본 문제. 노력해야지. 젊은 작가들이 재미있는 건 항상 노력할 수 있잖아. 챌린지. 한국 미술시장을 보면 일본, 중국보다 젊은 작가들한테 지원이 많아. 계속 작업을 하고 싶으면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찾으면 돼. 그리고 노력하는 거 재미있잖아. 그 노력으로 약간의 차이가 생기는 거 같애.

 

맞아. 타카히토의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표면적으로 멋있고 임팩트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키워드 2~3개 정도를 이해할 수 있으면 괜찮아. 사람들이 그 정도의 관심을 가져준다면 이후에 사람 대 사람으로 얘기할 수 있잖아. 작품 뒤에 있는 얘기, 작품 뒤에 있는 내 생각을 만나서 설명할 수 있잖아. 작품 안에 내 생각을 전부 담는 건 아직 어려워요. 그래서 내가 노력하는 건 키워드 2~3개 정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거. 

 

타카히토의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유토피아를 만들었을 거야. (웃음) 유토피아에 대한 이미지와 단어들만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말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단어들을 합체하고, 단어들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다보면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솔직하게 살고 싶어. 멋있는 거, 똑똑한 거 말고 솔직하게. 내가 보는 내 모습과 다른 사람이 보는 내 모습이 똑같으면 좋겠어. 내 작품과 나 자신의 관계도 그랬으면 좋겠고. 근데 그거 어렵지. 하고 싶은 걸 하고,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거. 어렵지만 그렇게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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