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taehoon's talk-in
Let the rockers rock hard
록 밴드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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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이준익 감독의 영화 <즐거운 인생>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일상에 팍 찌든 아저씨들의 록 밴드 재결성 스토리가 유머와 페이소스를 더블 장착하고 펼쳐졌다.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영화 속 저들에게 록 밴드란 어떤 의미인 것일까? 그리고 영화를 본 10대, 20대들은 그들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밴드가 등장하는 영화는 의외로 많다. 물 건너 할리우드 이야기가 아니다. 나열하면 이렇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가장 대표적인 영화니 논외로 치더라도, <친구>에서 ‘연극이 끝난 후’를 부르던 리더 김보경의 고등학교 밴드부터, <님은 먼곳에>에서 베트남을 전전하던 정재영, 수애의 속칭 미8군 밴드가 있다. 드라마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불암 아저씨가 주연을 맡았던 <고개숙인 남자>에 삐삐롱스타킹의 박현준이 리더를 맡은 밴드가 등장했었고, 최근 화제를 모은 <나는 전설이다>의 컴백 마돈나 밴드와 부활 김태원의 일대기를 다룬 <락 ROCK 樂>의 밴드도 한 자리 차지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영화는 록 밴드를 해방과 쾌감으로 다룬다. 꿈은 사라지고, 남루한 밥벌이만 남은 쓸쓸한 중생들의 유일한 돌파구로 밴드를 다루는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에서 이런 팀을 만나기란 극히 어렵다. 홍대의 연습실엔 비틀즈(Beatles)를 꿈꾸는 젊은 밴드들과 간혹 첫 사랑 같은 음악을 잊지 못하는 직장인 밴드들이 제각각의 소리를 내며 합주중이다. 하지만, 이들의 소리는 큰 울림으로 세상에 퍼지지 못한다. 10대 걸 그룹들로 도배해버린 TV 운운하는 것도 지겹지만, 분명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됨도 사실이다.


밴드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나도 해봤다는 뜻이다). 각기 다른 파트의 악기가 한 곡 안에서 박자와 음정이 맞아 들어갈 때의 희열을. 산에 오르지 않는 사람에게 등산의 위대함을 전파하는 어리석음이겠지만, 록 밴드라는 자발적인 모임의 오르가즘은 섹스와 알콜보다도 더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킨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강제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100% 현장음으로 즐기기 때문이며, 강제 교육과 생계를 위한 직장 생활과 은행 빚을 갚기 위해 평생을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유일한 자기 선택으로 했던 일이라면 오직 록 밴드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겐 우스운 농담이 하나 있다. 고집불통의 인간들에게 짜증을 부리곤 한다. “도대체 남의 말을 왜 그리도 안 들어 쳐 먹는 거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그들의 대답은 일관되다. “부모가 하지 말라는 음악 하는 놈들이 누구 말을 들어요?”그렇다. 나와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나이다보니, 배불뚝이 친구들과 대머리 친구들이 늘어간다. 만나면 하루 종일 골프 얘기뿐이다. 주말이면 무박 2일로 잠만 자던 인간들이 골프를 배운 후론, 새벽 5시면 일어나 <패스트 & 퓨리어스-도쿄 드리프트>의 주인공들처럼 차를 몰고 필드로 돌진해 간단다. 사회적인 강압 때문에 배우기 시작한 골프지만, 사람에 따라선 꽤나 푹 빠져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의 신나는 무용담 뒤에는 어김없이 늙은 수컷들의 초라함이 배어 나온다. 젊음을 잃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묘한 상실감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가끔 술자리에서 그들에게 권해본다. “우리 다시 록 밴드 한 번 해보는 거 어때?”


영화에 유독 나이든 아저씨들의 록 밴드 재결성이 늘어나게 된 데는 일본 그룹 미스터 칠드런(Mr. Children)의 전설적인(!) 뮤직 비디오 ‘크루미’의 영향이 크다. 아저씨보다는 노인에 가까운 옛 친구들이 늦은 밤 식당에 모여 다시 밴드를 결성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다룬 이 뮤직 비디오는 이미 그 시기를 지나친 사람들의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을 고이게 만들었다. 밴드 재결성을 제안하며 친구 앞에서 오만 인상을 다 지으며 어쿠스틱 기타를 치던 노친네와 그 앞에서 눈알이 빠질 듯 친구의 노래를 듣던 친구, 뚱뚱해진 몸을 이끌고 그 친구들과 함께 자리를 하는 친구와 마누라 몰래 러닝 차림으로 헉헉거리며 예전의 멤버들을 만나러 뛰어 온 친구.


난 그들에게서 옛날 옛적 그 때 이후, 단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지 못한 채 인생을 허비하는 지금 내 또래의 친구들을 본다. 분명 집 어딘가 2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용돈을 모아 샀던 콜트의 일렉트릭 기타와 스윙의 베이스 기타가 있을 것이다. 왜 우린 그 기타를 다시 잡을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세상의 규칙에 순응하며 수동적으로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죽기 전에 단 한 가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면 머리를 길게 기르고 온 몸을 가죽과 쇠사슬로 칭칭 감은 채 록 밴드를 결성하고 싶다. 딥 퍼플(Deep Purple)의 ‘Highway Star’와 라우드니스(Loudness)의 ‘Devil Soldier’를 연주하며 여고생들의 환호를 받아보고 싶다. 그리곤 마지막 곡을 연주하며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다음 생에선 꼭 믹 재거(Mick Jagger)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금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친구가 운영하는 홍대 바에서 술을 마신다. 그렇다. 이제 내 친구들은 클럽의 밴드가 아닌, 클럽과 바의 사장들이 되어 있다. 취기가 적당히 올라 집에 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거리를 걸어가며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홍대의 클럽 데이를 주관하는 모임에서 일 년에 한 번 만이라도 ‘올드스쿨 데이’를 만들어 준다면 어떨까? 세포 분열처럼 형체도 없이 흩어진 예전 아마추어 록커들에게 클럽을 개방하고, 그들의 연주를 듣겠다는 제안을 해 준다면 어떨까? 아마도 장담하건데, 흥행엔 성공할 것이다. 자기들이 알아서 가족과 직장 동료들을 구름처럼 몰고 나타날 테니 말이다.


파운드 매거진 기자에게 칼럼의 내용에 대한 제안을 맡았다. 연말 시상식에 TV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위해 급조됐던 연예인 밴드들이 후보로 오른 것을 ‘까’주면 어떻겠냐고.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어차피 엉망진창인 시상식 얘기를 다시 해서 무엇 하겠나. 하지만 혹시라도 그들의 수상에 자극 받은 배 뽈록 대머리 아저씨들이 이리저리 전화를 걸어, “야, 우리 다시 밴드하자”라고 흥분한 목소리를 들려준다면 나름의 의미 있는 시상식이라 자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갑자기 왕년의 베이스 플레이어는 한 동안 케이스에서 꺼내보지도 않았던 베이스를 손에 들고, 어색한 핑거링으로 튜닝에 열중하고 있다. 시끄럽다는 마누라의 잔소리를 들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