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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마리아.

제목에서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원래 레드마리아는 촬영을 위해 필리핀 연수를 하던 당시

현지에서 사용하려고 했던 경순감독의 닉네임이었다고 한다.


우리 머리 속에 자리하고 있는 마리아라는 규범적 의미에

폭발적이고 강렬하며 열정적인 레드라는 단어를 더해

다분히 중의적이고 상징적인 이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포스터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여성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여성의 노동과 몸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것을 따로 따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국/일본/필리핀의 여성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노동과 몸을 옴니버스 다큐 형태로 제시한다.


텍스트의 나열로 시작된 영화는

여성들의 배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진행된다.


수영장이나 목욕탕이 아닌 곳에서는 선뜻 보여주기 쉽지 않은 곳.

이것은 여성의 노동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시작이 된다.

생리를 하고 임신과 출산을 담당하는 곳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여성으로서의 능력을 재조명하는 지점으로 배를 선택한 것이다.


배라는 공통 지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가사 노동자, 성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위안부 등으로 불리는

다양한 여성의 일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영화는 어떠한 윤리적 판단의 잣대도 들이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사회적 편견, 규정된 사고의 울타리를 인지하게끔 도와준다.

그리고 그 테두리 속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레드마리아는 모든 제작 여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카메라 워킹은 거칠고, 앵글은 급격히 변화한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만큼은 가벼움 속의 진중함을 전달하고 있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몸.

몸으로 생산하는 노동, 몸으로 잉태되는 생명, 몸으로 연결되는 삶...


조금만 더 생각의 테두리를 느슨하게 풀어주자.

조금만 더 주변을 따스하게 바라보자.


그러면 조금은 이해하게 되겠지.

마리아가 마리아이든, 블랙마리아이든, 레드마리아이든

마리아는 마리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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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독립영화 쇼케이스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감독님께 따로 질문했던 것이 있었다.

필리핀 여성인 그레스이가 파괴되어가는 거주지를 바라보며 '한국 때문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그 컷을 편집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전체적인 맥락 상 그 부분이 없어도 될 것 같은데 놔두신 이유가 뭔지,

왜 한국 때문에 그들의 보금자리가 파괴되는 것인지 질문했다.


경순감독님께서는 원래 가편본에는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더 길게 들어있었는데

전체적인 흐름 상 길게 필요하진 않을 것 같아서 그 부분만 놔두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에 들어와서 공사를 진행하는 건 한진중공업이라고 한다.


우리의 자본주의를 위해 누군가의 삶을 훼손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