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 But Realistic
Jang, Hyunsung

“우리라고 못할 게 뭐 있냐?” 극단연출자 ‘민기’의 한 마디 때문에 삼류에로극단은 <햄릿>을 연극 무대에 올리게 된다. 에로물만 연기하던 배우들은 ‘고전 중의 고전’ ‘4대 비극’ ‘연극의 대명사’로 불리는, 자신들에겐 맞지 않는 옷 같은 무겁고도 심오한 작품을 위해 <햄릿>의 가계도부터 연구하고, 연습한다. 당장 생업을 걱정해야할 만큼 비루하고, 처절하기까지 한 극단 사람들의 삶은 가혹한 운명 속에서 갈등을 겪으며 최후의 선택을 하는 햄릿의 인생과 겹쳐진다. 

모두 류훈 감독의 영화 <커튼콜> 이야기다. 삼류에로극단의 운명을 쥐고,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민기를 연기한 장현성을 개봉 3주 전에 만났다. 지난 4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장현성은 “이 영화, 정말 자신 있다” 거듭 말한다. 영화에 관한 장현성의 문장들은 출연한 배우가 으레 하는 홍보와는 결이 다른, 어떤 증언처럼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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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늘 오전에 다른 스케줄이 있었다고요? 
연극인 대상으로 시사회를 하고 왔어요. 400명 정도를 초청해서 시사회를 열고 모니터를 해봤죠. <전주영화제(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끝나고 두 번째로 관객들과 만난 거였는데, 정말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주시더라고요. 웃다가 울다가 100분이 지났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단 한 분도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으셨어요. 

연극인이 연극 영화를 봤기 때문이었을까요? 
<커튼콜>의 구조가 굉장히 독창적이거든요. 연극을 무대로 올리는 과정을 통째로 보여주죠. <햄릿>이라는 연극과 <커튼콜>이라는 영화가 같이 움직여요. 그래서 연극인들이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커튼콜>을 두고 ‘라이브 코미디’라고도 하나 봐요. 
<햄릿>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모든 게 실시간으로 흘러가니까요. 연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영화에서 볼 수 있어요.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좌충우돌 부딪히면서 삼류에로극단이 만든 연극이 진행돼요.

<커튼콜>은 어떤 계기로 출연하게 됐나요? 
2~3년 전에 대본을 처음 받았어요. 참신한 소재이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어 정중히 고사했죠. 그러고 나서 한 1년 반 지났나? 영화 시나리오가 저한테 다시 왔는데, 처음과는 다르게 구조가 굉장히 촘촘해졌더라고요. 잘하면 이 영화 진짜 괜찮겠다, 싶었어요. 바로 감독님 만나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몇 가지 점검도 좀 해봤죠. 

그 ‘점검’이라는 건, 당신 자신이 오랫동안 연극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었을 것 같아요. 
연극을 영화로 만들 때, 우려될만한 지점들 몇 가지가 미리 보였던 거겠죠. 연극을 영상 언어로 본다는 건, 자칫하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거든요. 

무대에서의 현장감을 카메라에 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예전에 연극했을 때, <예술의 향기>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연극하는 걸 찍어 갔어요. 풀 샷 하나, 상수에 하나, 하수에 하나 이렇게 카메라를 세 대 두고 찍는 거죠. 우리가 무대에서 연극할 땐 재밌었지만, 그걸 영상으로 찍은 걸 보니까 너무 지루했어요. 그런 시행착오를 겪은 적 있으니까, <커튼콜>에서도 어떤 식으로 보여줘야 재밌을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테크니컬한 부분에서도 연구를 많이 했고요. 

연극 한 편이 통째 들어있는 시나리오였으니까, 연극은 연극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준비해야 했을 것 같아요. 
연극 연습과 영화 스터디를 동시에 했죠. 제가 제작진한테 걸었던 조건이 딱 하나 있었어요. 크랭크 인하기 전에 모든 배우가 함께 연습할 수 있는 연습실을 하나 오픈해달라고 했어요. 영화사 근처에 연습실을 하나 대여해 주시더라고요. 거기선 한 달을 연극 연습만 했어요.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호흡도 잘 맞았을 것 같아요. 
호흡이라는 건 결국 연습에서 만들어지는 건데, 한 신, 한 신을 함께 만들어 나갔던 과정이 개인적으로도, 영화 전체에도 많은 도움이 됐죠. 사실 전무송 선생님이랑 철민이(박철민) 형이랑 저를 제외하고 나머지 배우들은 전부 오디션을 거쳐서 들어왔어요. 모든 배우가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죠. <커튼콜>은 그래서 다들 자기 이야기인 거예요. 그래서 더욱 뜨겁게 배역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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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커튼콜> ⓒ봉봉미엘

삼류에로극단이 만든 <햄릿>은 기존의 플롯과 다른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박철민 배우만 보더라도, 애드립이 있을 것 같다는 예상은 누구나 할 테고요. (웃음) 
철민이 형은 영화에서도 애드립해요. (웃음) 원래 꿈은 배우였지만, 애드립 하는 개그맨으로 잠깐 반짝했다가 잘 안 돼서 극단 총무를 보게 된 사람으로 나와요. 그러다 <햄릿>의 해설자가 되죠. 거기서 애드립을 남발하고, 그래서 무대가 망가지기도 해요. 영화 속에 그런 장치들이 몇 개 있어요. 

<커튼콜>을 위해 열성적으로 홍보하고 있어요. 배우라면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홍보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정말 자신 있게 만들었다, 꼭 봐 달라”고 여러 번 말하는 현성 씨를 보니 어떤 진심이 느껴졌어요.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해요. 
그건 관객 장현성의 입장이에요. 물론 배우 장현성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지만요. 사실 <커튼콜>은 굉장히 작은 규모,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예요. 영화가 만들어져도 그게 끝이 아니라 개봉, 홍보, 배급 같은 이후의 과정들이 쭉 있잖아요. 그런 면에선 <커튼콜>은 굉장히 열악한 영화죠. 자본의 논리로 따진다면, 스크린이 백개 정도 되는 저희 영화는 선택받을 기회가 거의 없는 거예요. 영화가 이렇게 힘든데도 제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 영화는 정말로 훌륭한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어떤 면에서요? 
비유하자면, 너무너무 가난하고 힘겨운 환경에서 잘 자란, 바른 품성과 똘똘한 두뇌를 가진 둘째 아들이랄까? (웃음)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음식을 정성스럽게 차려 놨으니 많은 동네 분이 오셔서 드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저희는 얄팍한 공식으로 관객의 팔천 원, 구천 원을 강탈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로 순순한 노력과 열정이 가득 찬 마음으로, 놀라운 순간을 경험하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순간을 관객들에게도 전달해 드리고 만들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작품적으론 대단히 좋은 영화’가 자본적인 측면에선 ‘여유롭지 못한 작은 영화’라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던 거군요. 
또 이런 것도 있죠. 지난 몇 년간 한국 영화는 서너 가지 패턴으로 정리가 됐어요. 대기업에선 공식대로 영화를 만드니까요. 예를 들어 범죄, 케이퍼(Caper) 무비, 대기업, 검찰 같은 권력 이야기 같은 것들이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많이 봤지만, 한국 영화사에 이런 내용과 이런 형식의 영화가 패턴화된 경우는 거의 처음이에요. <커튼콜>은 그런 면에선 분명히 ‘다른’ 영화죠.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하는 것처럼,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건강해질 수 있죠.
천편일률로 정리되는 흥행 공식을 벗어난 <커튼콜> 같은 영화가 어떤 선순환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하나요? 
바람이죠. 다양성이 확보되어서 한국 영화계 전체가 건강해졌으면 하는 게 바람이에요.  

<햄릿>은 비극이지만, <커튼콜>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극일까요, 희극일까요? 
음, 희비극이죠.

어쩜 우리 인생이랑 똑같네요. 
그렇죠? (웃음) <커튼콜>은 생각보다 정교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설명하려면 굉장히 복잡해요. 우리 인생도 그렇잖아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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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커튼콜> ⓒ봉봉미엘

# 낭만에 대하여 
배우 장현성에게도 ‘커튼콜’ 같은 순간이 있었나요? 
많은 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 작품이 제일 그래요. <커튼콜>에 전무송 선생님이 나오시거든요. 제가 소년 장현성인 시절부터 선생님의 열렬한 팬이었어요. 한국 연극의 대명사 같은 분이시잖아요. 영화에서도 그런 분으로 나오시는데, 연로하셔서 치매가 와버렸죠. 선생님은 ‘클로디우스’역을 맡은 배우, 저는 연출자로 나오는데, 치매 때문에 <햄릿> 대사해야 되는데 <로미오> 대사하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나와요. 영화 막판엔 제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하는 대사를 읊는데, 그 순간 선생님이 자신의 삶을 돌이키면서 그 대사를 같이 읊는 장면이 있어요. 

말만 들었는데도 소름이 확 끼쳐요. 
그 순간 자체가 큰 전율이었죠. 연기하면서도 제 몸에 뭐가 이렇게 싹 올라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실제로 ‘햄릿’ 연기를 한 적 있죠? 언제였는지 기억나요? 
음, 글쎄, (19)96년 아님 (19)97년쯤에 했던 것 같아요. 국립극장에서. 

인터넷엔 1994년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그땐 아니었을 거예요. 왜냐면 제가 (19)94년도엔 ‘학전’에서 연극을 했었거든요. 

말 나온 김에 학전 얘기 좀 할까요? 극단 오디션은 어떤 계기로 보게 됐나요? 
전공은 연극연출이었는데, 졸업하니까 너무 막막했죠. 대학로에서 조연출을 한다는 것은…. 연출 선생님 따라다니면서 양말 빨고 빤스 빨면서 한 달에 3만 원 받는 게 조연출이었어요. 

생활이 안 됐을 텐데…. 
너무 막막해서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돌아가신 박광정 선배님을 알게 됐어요. 그 당시엔 형님이 대학로에서 굉장히 핫한 신인연출가였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학전이라는, 새로 생기는 극단에 조연출을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연출에서 다시 조연출로요? 
연출 입봉을 해서 이름 얻기도 힘든데, 다시 조연출을 하겠다고 하니까 이해가 안 됐죠. 그래서 누가 연출이냐고 여쭤봤더니, 김민기 선생님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형님이 저한테 “학전 배우 오디션을 한번 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니 제가 무슨 오디션을 봅니까, 했죠. 

그전엔 배우 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안 해봤다면 거짓말인데, 그래도 내가 어떻게 배우를 해, 이런 생각이 있었죠. 근데 대학 졸업하고 할 일이 없잖아요. 공인된 백수들이 막 쏟아져 나오는 게 연극과였으니까요. 그래서 한번 봐볼까, 하고 봤는데 덜컥 붙은 거예요. 그렇게 학전 1기가 됐어요. 그렇게 학전 레퍼토리를 계속 했죠.

<지하철 1호선>….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의형제>, <개똥이>.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때 동기들이 경구 형(설경구), 방은진, 최덕문, 황정민, 김윤석, 조승우…. 좋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연극 연습하고, 술 마시고,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는 게 너무 행복해서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어요. 눈만 뜨면 연습하고, 어제 잘 안됐던 부분 연습하고, 배역 바꿔가면서 또 해보고 그랬죠.

연극배우 시절을 회상하는 인터뷰에서 자주 ‘낭만’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가 있었네요. 
너무 좋았어요. 낭만적이었죠. 하루하루가 좋았고 재밌었고, 행복했어요.

배우는 연극계에서 영화, 방송 쪽으로 넘어갈 때 여러 가지 변화를 겪곤 하잖아요. 현성 씨의 경우는 어땠어요? 
일단 수입은 뭐, 한 백배는 늘었을 거예요. 저 말고 다른 배우들도 다들 백배라고 얘기할 거예요. 왜냐면, 지금 너무 많이 버는 게 아니라, 그때 너무 못 벌었으니까요. (웃음) 저는 학전에서 계속 연극을 하다가 2001년에 <나비>라는 영화로 데뷔했는데, 첫 주연이었어요. 그때 인생 처음으로 천만 원 개런티를 받았어요. 말도 못하게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죠. 그렇게 영화만 몇 년 했어요. 그러다가 드라마 제안이 왔죠. 드라마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선배들이 저한테 겁을 줬어요. “너 같은 성격의 애가 드라마 판에 나오면 엄청 상처받는다, 바로 그냥 병신 된다”고요.

선배들이 현성 씨를 어떻게 봤길래 그런 얘길 했을까요? 
모르겠어요, 저도. (웃음) 그래서 제가, 왜요? 했죠. 그랬더니 “거긴 엄청 이기적이고, 자기 것만 챙기고 그런 덴데, 니가 거기서 어영부영하다간 병신 되기 십상이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말렸는데도, 결국 드라마를 시작했어요. 
어쩌다 보니 또 하게 됐는데, 막상 해보니까 드라마도 저한테는 괜찮은 거예요. (웃음) 그때 박광정 선배가 하신 말씀이 생각나더라고요. “텔레비전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가 진짜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그게 무슨 얘긴지, 드라마를 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어떤 의미로 故 박광정 씨가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걸까요? 
영화나 연극은 배우한테 충분한 시간을 주잖아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게 도와주죠. 그런데 드라마는 그렇지 못해요. 제한된 시간 내에 빨리 찍어야 되고, 그래서 순간적인 집중력이 정말 중요하고. 

시간의 압박과, 밀어닥치는 쪽대본과…. 
그런 부담감과,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연기를 잘할 수 있는 배우들이 정말 대단한 배우들인 거죠.

연극 무대에서 카메라 앞으로 옮겨갔을 때의 어려움은 없었나요? 
저한텐 그 두 가지가 다를 게 별로 없었어요. 음, 이런 건 있었죠. 그때만 해도, 드라마가 배우를 프레임에 가둬놓는 시절이었어요. 배우가 이끄는 대로 만들어지는 연극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죠. 근데 그런 것도 조금만 훈련하면 금방 적응할 수 있어요. 테크니컬한 부분이니까요. 배우로서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들은 기술적으로 부족한 건 금방 극복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배우로서의 자의식이죠. 어떤 연기를 하든 배우로서의 자의식이 없다면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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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숙하고도 낯선
장현성은 2016년 한 해, 참 꾸준했다. <시그널>의 출세욕 강한 경찰청 수사국장 ‘김범주’, <미세스 캅2>의 경찰대 출신 검사 ‘박우진’, <디어 마이 프렌즈>의 단골손님 ‘일우’, <닥터스>의 국일병원 부원장 ‘김태호’를 지나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오성로펌 대표 ‘이동수’까지 올해에만 다섯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드라마 사이 한두 달의 간격을 빼면, 시청자는 일 년 내내 장현성을 볼 수 있었다. 장현성을 만난 날은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종영된 지 딱 이틀 지난 때였고, 2017년 방영 예정인 또 다른 드라마 <맨투맨> 촬영이 이미 들어간 때였다. 

요즘 잠은 잘 자요? 
엊그저께 <캐리어를 끄는 여자>가 끝나서, 이틀 삼일은 진짜 잘 잤어요.

워낙 쉬지 않고 다작하는 편인데 힘들지 않아요? 
미니시리즈 찍을 땐 밤새는 일이 부지기수니까 어쩔 수 없죠. 사실 제가 이것저것 되게 많이 한 사람처럼 보여도, 안 그래요.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편씩 하는 스케줄을 고수하려 하거든요. 한꺼번에 네 작품을 한 적 있긴 하지만, 그건 그때 딱 한 번뿐이었어요. 체력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지장이 생기지 않게 작품 수를 작품 수를 유지하려고 하죠.

새로 들어간 드라마 <맨투맨>은 어때요? 
<맨투맨>은 사전 제작이라 촬영을 많이 하진 않았어요. 이번엔 국정원 직원이에요. 첩보원.

‘높으신 분’ 역할을 이번에도 맡았네요. 거기서도 빌런(Villain)으로 나와요? 
뭐, 중간쯤? (웃음)

‘을’보단 ‘갑’ 캐릭터를 맡았던 작품들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검사, 국회의원, 형사과장, 로펌 대표. 이런 캐릭터가 많이 들어오는 이유가 뭘까요? 
음, 글쎄요. 감추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노블한 품성? (웃음)

(웃음) 그만큼 검증된 배우라는 뜻이기도 하겠죠. 
사실 좀 불만이에요. 다른 것도 잘할 수 있거든요. 알고 보면 다른 캐릭터도 많이 했어요. 작년엔 안판석 감독님하고 <풍문으로 들었소> 하면서 도장 파고 시계 고치는 소시민 연기를 하기도 했고요. 근데 아무리 이것저것 해도, 시청자들은 시청률 잘 나온 작품 위주로 기억을 많이 해주시죠. 그런 작품에서 주로 ‘배운 사람’으로 나왔으니까.

안판석 감독과 인연이 긴 편이죠? <하얀거탑>부터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다섯 작품을 같이 했어요. 
안판석 감독님이 계속 저를 써주셨다는 게 정말로 자랑스러워요. 제가 연극을 김민기 선생님께 배웠거든요. 드라마에선, 안 감독님이 저한텐 김민기 선생님 같은 분이에요. 연출가로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시는 분이죠. 근데 웃긴 게, 안 감독님 만나서 술 마셔도 또 김민기 선생님 얘길 해요. (웃음) 김민기 선생님은 모두의 스승 같은 분이시죠.

그런가 하면 김은희 작가 드라마엔 모두 출연했어요. 
장항준이 제 친구라서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어요. 옛날 얘긴데, 항준이가 입봉하고 나서 잘 안 되니까 은희가 구성작가를 하면서 겨우겨우 먹고 살았죠. 오죽하면 연극을 하던 제가, 연극 개런티 받아가지고 걔네들 술을 사줬다니까요? (웃음) 

그럼 꽤 오래된 얘긴데요? 
술도 오랫동안 사 줬어요. 그래도 밤새도록 술 마시면서 연극 얘기하고 드라마 얘기하고 소설 얘기하는 것도 재밌었어요. 그러다가 김은희가 드라마 작가가 되고, 김 작가 드라마에 적당한 배역이 생겨서 출연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니 전부 다 출연했네요. 처음부터 우린 꼭 같이하자, 하면서 의도해서 한 건 아니에요. (웃음) 배우 캐스팅은 작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요.

언젠가 ‘일상과 낙차가 큰 역할’을 선호한다고 한 적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예요. 셰익스피어나 브레히트(Bertolt Brecht),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 같은, 큰 서사가 움직이는 작품들 있잖아요. 그 어마어마한 서사에 압도당한 인간의 고통이랄까? 비극에 압도당하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그래서 고전이 가진 힘을 믿죠. 예전에 <구미호: 여우누이뎐>이란 드라마에 출연한 적 있었는데요. 처음 해본 사극이었는데,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읊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일상적으로 만날 수 없는 감정들을 경험하게 됐어요. 

다른 한 가지는요? 
아주 사소한 사건인데, 이걸 확대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안에서 수없이 부딪히는 내적인 갈등이 있고, 그 갈등이 세밀하게 움직이는 이야기요. 커다란 확대경으로 요리조리 들여다보면, 결국 만나게 되는 건 내밀한 나 자신이에요. 종합해보면 이 두 가지 사이에 간극이 있으니까, 낙차가 큰 캐릭터를 선호한다고 표현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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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커튼콜> ⓒ봉봉미엘

1993년, 뮤지컬로 데뷔해서 연극, 영화, 드라마를 종횡무진 하다 보니 어느덧 20년이나 지났어요. 
벌써요?

20년, 하니까 어떤 기분이 들어요? 
솔직히 말하면, 욕이 나올 것 같아요. (웃음)

어떤 이유에서요? 
20년이 어떻게 흘러왔나 싶어요. 왜 욕이 나오냐면, 20년이 너무 빨리 지나갔잖아요. 그 시간이 종이처럼 접혀버린 것 같아요. 근데 그만큼 앞으로의 20년도 이렇게 빨리 지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한 작품, 한 작품이 정말로 아까워요.

배우로서 경계하는 게 있나요? 
연기를 습관적으로 하는 거요. 제가 다니엘 데이 루이스(Daniel Day Lewis)처럼 6~7년에 한 번 영화하면서 아카데미 받아가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저는 연기를 하고 있지 않으면, 그냥 실업자예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액팅을 하고 있든 하고 있지 않든, 작품에 대해서 끊임없이 레미콘을 돌리고 있어요.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점검하고, 내 표현이 맞는지 늘 의심하려고 해요. 텔레비전에서, 극장에서 관객에게 보여지는 제 모습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평생 남는 거잖아요. 배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관객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럼 나머지 20년은 어떤 배우의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어요? 
작품성과 흥행성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요.

이미 그런 위치에 접어든 배우 아닐까요? 
아니에요. (웃음) 돈은 이 정도만 벌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연로하신 어머니, 아이들, 아내, 우리 가족들이 큰 불편을 겪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는 정도만 된다면요. 비싼 술, 비싼 차 같은 건 전혀 원하지 않아요. 어렸을 적에 선배들이 저한테 사줬던 막걸리를, 후배들한테 돌려줄 수 있는 정도만 유지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이제는, 얼굴과 이름이 손톱만큼은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관객분들께 배우 장현성에 대한 믿음을 돌려 드리고 싶어요. 어떤 작품을 선택했을 때, ‘저 배우가 선택한 작품은 어떤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다’ 정도의 믿음을 드릴 수 있다면, 저한텐 충분할 것 같아요. 

# 현실적 낭만주의자
장현성은 특정 조직에 소속되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부패한 캐릭터를 연기한 적 있다. 배우의 극 중 모습은 시청자들은 물론, 실제 ‘조직’ 사람들마저 거북해할 정도의 악인이었다. 그런가 하면, 순박하다 못해 ‘찌질한’ 영세 자영업자로 나왔던 드라마에선 디테일의 미세한 조각마저 챙길 정도로 세심한 모습을 보였다. ‘지체 높으신 분’부터 ‘소시민’까지, 모든 허구적 캐릭터를 현실로 끌어오는 연기력은 “인생은 낭만”이라 말하는 장현성의 태도로부터 나온다. 그 낭만을 지탱하는 힘은 긍정적인 사고다. 

장현성은 한때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라 소개했다. 가장 힘들었을 때를 물어보면, 그 시절이 낭만적인 근거만을 늘어놓았다. 실제로 만난 장현성도 그랬다.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하는,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그 목소리만큼이나 소탈하고도 유연한, 무엇보다도 진정과 진실의 힘을 믿는 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