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nner of creative spirits
NO, SANGHO


어른이 읽는 동화

노상호의 작품을 설명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판화’와 ‘동화’다. 그는 동판을 가공해 그림을 새긴 후 찍어내 직접 책으로 묶는다. 인쇄기로 대량복제하지 않은, 장인적인 정성으로 수제작한 중세풍의 책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책에는 ‘어른이 읽는 동화’가 실려 있다.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주는 세밀한 그림, 그 위로 검은 탐욕의 그림자가 섬뜩하게 번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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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작품을 ‘어른이 읽는 동화’라고 소개했어요. 무슨 의미인가요? 동화의 형식을 빌려 왔지만 그 내용은 동화답지 않게 잔혹할 때가 많아요. 또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어른들이 읽어야 더 이해가 갈 법한 내용이 많죠. 무엇보다 제가 이야기를 구성할 때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읽을 것을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어른이 읽는 동화’에요.

 

확실히 아이들을 위한 동화는 아닌 것 같아요. 작품을 보면 묘하게 신경을 긁는 불온함, 위화감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내려다보니 아무래도 그런 느낌을 주게 돼요. 이야기 또한 어두운 편인데, 그림에서 느껴지는 불온함과 함께 외롭고 슬프게 다가온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는 분도 있지만 때로는 너무 잔혹하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방식의 표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에 나오는 ‘이름 없는 괴물’이라는 동화에서 큰 영향을 받았던 게 시작이었어요. 그 작품을 접하면서 어딘가 부조리하고 잔인한 풍의 동화들에 매력을 느꼈죠.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매력적인 작품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이야기를 만들게 됐어요.

 

그런 풍의 동화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뭔가요? 인간의 본성, 욕심과 같은 깊고 어두운 이야기를 ‘동화’라는 어린이의 형식과 소재를 빌려 말한다는 것이 매력적이거든요. 살아가면서 나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것들을 그대로, 동화의 형식만 빌려 표현하는 거죠.

 

판화라는 표현 수단도 인상적인데요. 손으로 직접 찍어내어 제작하는 방식을 택한 이유는 뭔가요? 제가 미대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있는데요. 판화로 찍힌 중세시대 책들의 아름다움을 접하면서 이런 작업을 저 스스로도 해보고 싶었어요. 또 판화는 제가 표현하고 싶은 빈티지한 느낌을 잘 전달해 줘요. 사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골목 끝 어귀에 있는 골동품 가게에서 어렵사리 찾아낸 옛 양장본 동화책’같은 걸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웃음) 그런 목표에 어울리는 전통적인 방식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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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동판화를 선호하는 이유도 궁금해요. 판화 중에 가장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방식이거든요. 제 그림이 섬세한 편이라 동판화로 표현하는 게 가장 잘 맞아요. 목판화와 비교했을 때, 흑백으로 다양한 톤을 내기도 더 좋고요.

 

작업을 하는 과정에 애로사항은 없나요? 어떤 점이 힘들어요? 작업을 할 때보단 작업을 마치고 대중에게 다가갈 때의 어려움이 더 커요. 사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게 좀 애매하잖아요. 어린이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어른을 위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동화적인 요소가 있고. 또 만화라고 하기에도 미술작품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애매하죠. 그래서 작품을 홍보하고 판매할 곳이 그리 많지 않아요. 시장이 정확히 형성돼 있지 않은 게 가장 힘들죠.

 

그 부분에서는 판화라는 수단이 갖는 한계도 있을 것 같아요.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는 점 때문에요. 그것도 정말 아쉬운 부분이에요. 게다가 판화로 작업을 하면 일반 드로잉보다 작업시간이 10배 이상 늘어나기 때문에 많은 작업을 할 수도 없죠. 그래서 최근엔 그냥 펜으로 그려 인쇄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이런 방법으로 작업을 할 것 같아요. 즉 판화로 작업을 한 고품질의 책을 만들고, 일종의 보급판 같은 인쇄된 책도 함께 만들어 두 가지를 같이 판매하는 식이죠.

 

작품은 어떤 경로를 통해 공개되나요? 홈페이지(http://nemonan.net)을 통해 홍보와 판매를 같이 하고 있어요. 각종 아트북을 판매하는 곳에서도 만나볼 수 있고요. 여러 행사에 출품하여 대중과 만나려 노력하기도 해요. 하지만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 피드백을 받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직접 노점을 만들어 판매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어요.

 

‘어른을 위한 동화’를 판화로 빚어내는 예술가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완벽한 이야기를 완벽한 그림에 완벽한 책으로 엮어내고 싶어요. 이야기와 그림, 두 가지를 모두를 만족시키는 게 사실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럴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제 목표예요. 비유하자면 ‘먼지가 뿌옇게 앉은 창고에서 우연히 찾아낸 보석’처럼 매력적인 것이었으면 좋겠어요.